처음에는 어머니가 두번째엔 아버지가 전쟁통에 끌려갔다. 조나단과 여동생은 친척 아저씨의 집으로 대피해 농사꾼으로 살았다. 아저씨가 그를 군에 입대시켰고 제대하고 보니 동생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상태였다. 조나단은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결혼도 했다. 결혼 4개월 만에 처가 아들을 낳았다. 해를 넘기지 않고 그 해 가을 아내는 과일장수와 눈이 맞아 달아난다. 조나단은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다.1950년, 짐을 싸서 파리로 떠난다. 운명처럼 플랑슈가의 7층 집에 <코딱지만한 방> 하나를 얻었고 곧이어 그 방과 사랑에 빠진다. 인간은 주지 않았던 안식을 그의 24번 방이 제공했던 것이다. "삶의 마땅찮은 불상사로부터 조나단을 보호하는"(p9) 쉼터로써 30년 간 기능한 방은 곧 조나단의 소유가 될 작정이었다. 방문 앞에 한 마리의 비둘기가 나타나 똥을 싸지르지 않았다면. 그래서 조나단이 방과 함께 쌓아온 30년의 평화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완벽한 부부처럼 생의 끝까지 함께 했을텐데...
실망스럽게도 조나단은 애인을 버리고 달아난다. 인생이란 바다에서 그를 지켜주던 선실에 대한 권리를 비둘기에게 양도한 그는 짐을 꾸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났다. 일체의 반항조차 없었다. (내가 방이면 통곡했다 진짜;;) 다행히도 그에겐 피신할만한 장소가 있었다. 직장, 24번 방을 만났던 때에 함께 거머쥔 행운. 세브르가의 은행에서 30년 째 경비원으로 근무 중인 조나단은 비둘기로 느낀 고통, 회한, 좌절감과 무관하게 그날의 근무에 돌입한다. 퇴근 후엔 방이 아니라 호텔에 묵겠다 다짐하며. 호텔에서 쓸 수 있는 돈을 계산하고, 하루가 아닌 장기투숙이 될지도 모를 앞날에 대한 예산을 짜면서, 몇 년 지나지 않아 통장잔고가 거덜나고 파리의 노숙자로 집도 절도 없이 나앉을지도 모를 미래를 암담하게 그리며. 조나단은 거듭 무력감에 빠진다. 죽기로 결심한다.
삶의 가혹함에 너무 일찍 휘둘리는 바람에 삶이 주는 좋은 것에서도 완벽하게 벗어나 버린 이가 조나단 같았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일 뿐 그는 일로써 어떤 성취를 이루기를 바라지 않는다. 인간관계랄 것도 없다. 아내와 헤어진 후 단 한번도 연애를 하지 않았으며 친구도 없고 오롯이 방을 가족 삼아 살고 있다. 그가 소원하는 것은 24번 방에 대한 완벽한 권한, 규칙적이고 변하지 않는 삶,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들의 연속뿐이다. 나는 조나단을 많이 닮아서 겁이 많고 강박적이며 실패할 것이 두려워 시작조차 못하는 그의 모습이 많이 짠했다. 그런 그가 죽음을 결심했을 때는 좀머 씨 때와는 달리 겁도 나고 무섭기까지 했는데 좀머 씨가 편안해지기를 바란 것과는 달리 조나단은 비둘기와 투쟁하기를 바랬다.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랬으며 비둘기 똥이나 깃털쯤 가뿐히 무시하거나 쌈닭처럼 걸레를 휘둘렀으면 했다. 여태와는 다른 선택을 결심하고 다른 결정을 하라고 등 떠밀고 싶었다. 좀머 씨는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라고 말했으며 조나단도 다르지 않을테지만 도무지 그를 그냥 내버려 두기가 싫었서 곤란한 심정이었다.
죽음을 생각한 다음 날 아침 그는 24번 방으로 되돌아간다. 지난 새벽의 폭우로 맑게 개인 풍경을 헤치고 나아가 7층의 계단을 오른다. 복도에 선다. 창으로 비쳐들어오는 햇살을 보고 복도를 살핀다. 부디 그가 새로운 시작점을 찾았기를. 부디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내었기를. 24번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죽음이 아닌 삶을 생각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