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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리커버 에디션) - 까칠한 글쟁이의 달콤쌉싸름한 여행기 ㅣ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1
빌 브라이슨 지음, 김지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도른자 빌 브라이슨의 국적 초월 사랑의 기행기!
영국이여, 내 사랑을 받아도!!
남의 집 까칠한 남자 얘기는 왜 항상 재미있을까? 남의 나라 까칠한 남자 얘기도 재미있을까? 궁금해서 펼쳤다. 까칠하기가 사포가 형님할 지경인 남자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 산책이다. 그야 나를 부르는 숲에서도 느끼기는 했지만 이 형님 하루 24시간 웬종일 시비다. 애팔래치아 산맥에서는 자연 속 미운 놈과의 고립이라는 상황적 특수성이 있었으니만큼 영국에서는 좀 다를거라 생각했다. 웬걸.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하루종일 투덜투덜 하더라, 이건 리뷰적 과장이지만 내 여행 동무로 함께 했다면 진이 빠져 여행 포기라는 백기를 들었을 거다. 여행 다녀와서 인생 친구 손절했다는 무수한 경험담이 있지 않은가. 그런 경험담 속에 등장할만한 친구다. 다행히 나는 책 너머에서 빌 브라이슨을 읽고 있다. 사람 참 우습지만 내 일이 아니면 투털대는 것도 빈정대는 것도 아니꼽게 말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며 따져 묻는 것도 다 잼나단 말이지. 오히려 많이 불평해서 더 좋다?
3700만 미국인들이 외계인에게 납치된 적이 있다고 믿는단다. 그런 갤럽조사 결과를 보며 조국이 자신을 필요로 함을 직감한 빌 브라이슨. 3700만에 1을 보탤 계획이었을까? 아니면 1을 뺄 입담을 발휘할 생각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20년 동안 터 닦고 살던 영국 생활을 정리하면서 빌 브라이슨은 회자정리의 방안으로 여행을 결심한다. 애팔래치아 산맥 종주는 카츠와 함께 했지만 이번엔 나홀로다. 영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를 적엔 여행지의 펍에서 다음 여행지에 대한 썰을 풀곤 했단다. 그럼 술집 안의 모든 남자들의 관심이 자신에게로 쏟아졌다나? 미국인에게 타코 한 봉지 사러 나갈 정도의 거리를 두고 골치가 아프다는 사람, 이 길로 가다가 저 길을 우회해 다시 이쪽 길로 가라는 등의 훈수를 쏟아내는 사람, 그 훈수에 반박하는 사람, 그 반박을 다시 반박하는 사람, 출발할 시간에 대해서까지 각종 논쟁이 벌어지지만 이거 절대로 믿으면 안된다는 참담한 경험담으로 문을 연 여행기는 시작부터 아찔했다. 그는 이제 영국인 네비를 쓰지 않고 영국인이 제작한 지도를 배낭에 싣는다. 물론 지도를 제대로 본다는 보장은 없지만.
매일 밤 길바닥에서 온전한 잠자리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은 형님은 어쩐 일인지 열에 여덟은 손꼽히게 최악인 숙박업소의 문을 두드린다. 걸핏하면 비가 와서 쫄쫄 젖은 채로 식당으로 피신, 카페로 피신, 호텔로 피신, 이도저도 안될 때는 내내 비를 맞으며 걷기도 한다. 지난번의 폐렴을 걱정하면서. 기차는 놓치기 일쑤이며 노선 파악도 잘 되지 않고 무슨 놈의 배차 간격이 이런지 기차랑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떠나는 버스도 당연하지만 못탈 때가 많다. 아니면 버스 운행이 없던가. 철도 등 대중교통 운행이 현격히 줄어드는 영국의 주말은 매우 조용하시다. 산더미 같은 무게의 지도 보기가 취미인데 매번 길도 잃는다. 친절을 원치 않을 때 친절을 받아 당황하고 친절을 원할 때엔 철저히 외면 당해 울분을 터트리는 불운의 형님 기행기. 거기다 아는 것도 많아서 도무지 만만하게 지나치는 상황이 없다. 스톤헨지에서의 황홀한 11분, 딱 거기까지만 황홀하고 40분은 지루하더라는 이야기, 대처 행정부에 의해 해변이지만 해변으로 인정 받지 못한 휴양도시 블랙풀과 모어캠비에서의 하루들, 이스트앵글리아의 2인치(5cm) 눈을 두고 폭설이라며 기사를 쏟아내는 기자에게 항의 서한을 쓰다가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편지지를 구겨버린 아침, 조지 오웰의 책 <위건 피어로 가는 길>에서 얘기하는 노동자들의 불결함과 척박함, 그러나 책과 너무나도 대조되는 정결한 도시 위건 피어와 광부들의 그림으로 받은 감동 등 읽을 거리가 참 많은 여행기다.
소박하고 오래되고 변치 않는 것을 좋아하는 형님. 변했다 할지라도 시간 속에 닿은 사람들의 손길이 아름다움을 보태기만 했다는 확신이 드는 장소들에 애정을 쏟는 형님. 그런 형님의 기준에 못미쳐서 대대적인 불평을 들은 지역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까탈스런 여행자라 여행을 다녀왔다라는 안온한 말보다는 여행을 치뤘다는 전투적인 단어가 더 어울릴 법한 시간을 보냈고 또 한층 전투적으로 기행기도 쓴 것 같아 마지막까지 발로 차고 싶은 주둥이를 털어줄거라 예상했지만 이럴 수가! 독자의 뻔한 추측을 와장창 깨며 영국에 대한 대대적인 사랑을 고백하며 여행은 끝이 난다. 내가 영국이면 심쿵했다 진짜. "전에도 말했고 앞으로도 다시 말할 이야기지만 나는 영국이 좋다. 말로 다 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 드디어 나는 목초지 입구에서 등을 돌리고 자동차로 올라탔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확신하면서."(p509) 근데 얄미워도 너무너무 얄미워서 영국인들은 너 오지맛! 이럴 지도. 형님 이 여행기 2탄도 쓰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