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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 1,000년을 하루 만에 독파하는 최소한의 로마 지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모든 음식도 로마로 통한다?
로마 시대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전차 경기와 검투사들의 숨막히는 대결, 이를 관람하기 위해 모인 로마인들로 꽉찬 거대 원형 경기장 말이다. 영화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로마인들은 백만 인구의 도시 내부에 잔뜩 들어선 테르모폴리아(포장마차) 앞에 서서 튀긴 안주와 소시지 위에 가룸(생선젓갈)을 뿌려 먹었을 것이다. 소금을 치고 올리브 오일을 잔뜩 뿌린 샐러드도 먹었을지 모른다. 물을 적정 비율로 탄 와인을 마시며 목도 축였을테고. 간식 삼아 병아리콩도 씹었을까? 잔뜩 배를 불린 후 콜로세움으로 발을 들였을 로마 자유민들의 열기를 상상한다.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를 읽으면서 말이다.
로마에 관해서 괴담인지 전설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여기저기 책에서 줏어들었다. 로마인들은 먹기 위해 토하고 다시 먹었다더라. 로마의 어느 왕은 한 끼 식사로 굴을 천 개나 먹었다더라. 로마의 어느 귀족이 애완 물고기 지느러미에 황금 귀걸이를 달았다더라. 주지육림도 웃고갈 에피소드들이 모두 사실일까? 비슷한 시대의 그 어느 나라도, 로마 멸망 후 들어선 그 어느 국가도 누리지 못한 풍요로움을 귀족의 일부가 아니라 다수 평민들까지 누렸던 곳이 로마이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진실이라고 믿기엔 너무 과하지 않은가. 그러나 만약 진실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걸까? 답은 사실 빤하다. 돈과 시간이 남아돌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활발한 정복 전쟁으로.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전체, 지중해 전체를 지배하는 패권 국가로 거듭난 로마의 부유함은 로마 시민 절반에게 무상 식량을 제공할 수 있을 정도였다. 힘든 일, 노동력 팍팍 들어가는 일은 나 같은 노예가 다해줘 밥은 국가가 알아서 제공해 돈이 돈을 불러서 자꾸만 부유해지는 국가의 국민들이 뭘 했겠는가. 먹고 놀며 사는 거지. 팍팍!
양치기 로물루스에 의해 개국한 로마는 일곱 언덕에서 양을 치고 농사를 짓는 가난한 나라였다. 아침에는 죽을 먹었고 양식은 기껏해야 양젖과 치즈, 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로마가 에트루리아 왕국과의 전쟁으로 에스티아 염전을 확보하며 천연소금밭 오스티아를 획득한다. 하얀 황금이라 불릴 정도로 값 비쌌던 소금으로 로마는 차츰 부유해진다. 로마인의 식탁엔 소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비아 살라비아라는 소금길은 로마 제국의 1번 가도로써 로마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자 정치 안정의 지름길이 됐다. 이후 벌어진 1, 2, 3차 포에니 전쟁으로 시칠리아, 소아시아, 카르타고를 확보하며 로마인의 주식은 죽에서 빵으로 변화하고 악티움 해전으로 이집트를 쟁탈한 후엔 쏟아지는 곡물들로 빵의 무상 분배마저 이루어진다. "로마는 아프리카카 8개월을 먹여 살리고, 나머지 4개월은 이집트가 먹여 살린다"(p194)고 말 할 정도로 식민지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빵집, 제빵업 전성시대가 열리며 로마인들은 더는 집에서 빵을 만들지 않는다. 여인들의 노동시간이 대폭 줄어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공복지로 지급되는 무상 빵 덕분에 로마의 평민들도 농사 같은 힘든 육체노동에 종사하지 않고 거의가 장사를 비롯한 상업과 공업으로 업종 변경을 꾀한다. 주부였던 평민여성들도 사회로 뛰어나왔다. 현대여성들에 견주어 가장 자유롭게 활동하며 사회생황을 했던 이들이 2천년 전의 로마 여성들이라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전쟁이 가져온 변화가 소금 그리고 빵 뿐이었을까? 와인과 올리브, 굴, 스파이스. 로마인의 풍요로워진 식탁과 함께 역사가 펼쳐진다.
동시대의 중국이나 한국이 가진 역사도 물론 대단하지만 로마 시대의 발전사는 입이 떡 벌어지게 놀랍다. 로마 식탁을 풍성하게 한 음식들이 어떻게 로마 제국의 경제를 떠받쳤을까? 비율이 늘었다 줄었다 하며 변동이 있긴 했지만 제일 잘 나갈 때는 로마 시민 절반에 해당하는 인구에 공짜 식량을 제공한 로마의 부유함은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몇 년도 아니고 몇 백년을 빵과 때때로 소금과 올리브, 와인까지 무료 제공한 로마가 쫄딱 망해버린 이유는 또 뭘까? 상류층의 향락이 발달시킨 로마의 식문화와 목욕 문화 등등 소소하지만 재미난 이야기거리를 만나고픈 독자는 이 책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를 꼭 읽기 바란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센치만 낮았어도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거라는 말을 무지하게 믿어왔던 나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높았거나 낮았거나 그 역사에 변함이 없었을거란 사실을 이 책으로 알게 된 게 못내 뿌듯하다. 어디가서 멋모르고 떠들다가 창피당할 뻔. 궁금해했던 그리스 로마 문학 속 음식 이야기도 두어번 등장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는 케이크가, 오뒷세이아에서는 소시지가 나왔다는데 물론 내 기억엔 없다. 양의 내장에 혈액과 지방을 채웠다는 문장을 봐도 그렇구나, 그리스에서는 소시지가 발달했었구나 하는 생각 같은 건 전혀 못했으니까. 책 한 권을 읽어도 내가 가진 바 지식이 많아야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