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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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웨스트오버라는 미국 여성의 에세이다. 차라리 소설이라 믿고 싶은 내용들이 책의 처음부터 등장해서 많이 암담했다. 타라의 부모님은 모르몬교 신자다. 무교에 가까운 불교도인 내 눈에는 정신병적 광신도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건 악마에게 애들을 통째로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믿고 있다. 현대의학을 불신하여 병원을 가거나 약을 먹거나 예방주사를 맞는 법도 없다. 신의 영적인 힘에 기대어 자연 치료를 해야하는데 믿음이 없는 자들이 병원을 가서 독약과 다름없는 약을 처방받아 죽음을 재촉한다는 것이다. 정부 또한 기피대상으로 가족의 기록이 남을만한 어떤 행정상의 서류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들은 타라와 형제들 몇 몇의 출생신고조차 포기한다. 타라는 학교를 가지 않는 대신 가정학습을 했지만 그나마도 엄마의 중도 포기로 무산되었으며 이후에는 아버지의 폐철 처리장에서 노동을 한다.

2천년이 되면 세상이 종말할 것이기에 때를 기다리며 물자를 모아야 하는 부모님에게 현금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7명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훌륭한 노동력이다. 형제들은 폐철을 수집하고 절단하고 쌓고 압축하는 일들에 투입됐고 도끼와 절단기와 압축기와 거대 가위라는 위험한 도구들에 노출됐다. 누구라고 콕 집을 것도 없이 모든 아이들이 다쳤다. 누군가는 손이 베였고 누군가는 손가락이 잘렸으며 또 누군가는 추락하고 깔리고 부서지고 데이고 살이 뭉개진 채로 집으로 달음박질 쳤다. 모든 치료는 엄마의 전문적이지 않은 지식과 시간이 도맡았다. 타라가 처음 폐철 처리장에서 피를 흘린 날 이를 목격한 아버지는 아무 걱정 말라고 말한다. "주님과 주님의 천사들이 바로 여기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너를 다치게 두지 않으실 거야."(p100) 그에게는 딸의 피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인대도 상관없는 것이다. 조증, 우울증, 과대망상, 기타 뭐라 이름 붙여도 모두에 다 해당될 것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 아버지에게 영혼까지 예속 당한 어머니, 아버지의 비틀린 가치관과 기질을 모조리 물려 받은 오빠 숀에게 타라는 학대 당한다. 그 중 오빠 숀의 학대는 중범죄 수준이었는데 타라는 수시로 창녀, 껌뚱이 등의 비하로 정신적 고문을 받았고 사소한 말대꾸에도 머리채를 붙들려 벽에 쿵쿵 찍히거나 차에서 끌려나가 두들겨 맞는 등 육체적 학대를 당해야 했다. 간혹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으나 타라를 포함한 가족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럼에도 불구하고 일곱 아이 중 세 아이는 배움의 길을 찾아 제때 집을 떠난다.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과정들이 있었고 타라 또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에 진학한 타일러 오빠의 빈자리에서 홀로 공부를 시작한다. 리처드를 보고 타일러가, 타일러를 보고 타라가 보고 배운 것이리라. 타라를 비롯한 두 아들들은 홀로 책을 찾아 읽고 노동시간 앞뒤로 어떻게든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고 아버지 몰래 시험용 교과서를 사러 먼 서점까지 운전을 하고 공부할 장소를 찾아 외할머니 집으로 피신을 한다. 아버지의 매서운 눈초리, 종교적 설득과 협박, 뼛속 깊이 스며있는 교리들로 인해 배움에 죄책감을 느낄 때도 많지만 배움이 주는 뜻밖의 즐거움이나 집을 벗어나 더욱 안전한 세상으로 도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었기에 끈기를 발휘할 수 있었다. 최소 점수 정도를 점쳤지만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만큼의 고득점을 획득한 타라는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 후의 삶에서 타라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받아온 학대들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고 자신과 가족들이 일반적인 삶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알고 놀란다. 타라는 가족에 대한 소속감과 그들에게 받고픈 사랑으로 굶주려 있다. 그러나 배움이 열어주는 새로운 길을 포기할 수도 없다. 사탄에 씌인 타라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아버지의 의지는 드세다. 숀의 학대는 여동생들을 넘어 아내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가족 안에서 세상과 맞서던 타라는 이제 세상 속에서 가족과 맞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배움이라는 확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무기를 안고서 말이다.

가 1986년생이다. 레이먼드 카버가 1938년생인데 타라 가족들의 삶과 가치관이 딱 그 시절에 머물러 있어서 작가의 출생년도를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어디 아프리카 오지도 아니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20세기 21세기에 이게 정말 가능한 현실인지, 소설이 아닌게 맞는건지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았다. 황당한 건 타라 본인조차도 본인의 기억을 다 믿을 수 없어서 오빠들, 친척들과 함께 몇 번이나 원고를 검토하며 기억을 대조하고 자신의 기억이 맞지 않은 경우 별개 주석까지 달아가며 사실에 취중한 글쓰기를 했다는 거다. 믿어도 좋을 그런 이야기라는 확신이 되려 불만이 되는 작품이라니. 독자로 이 책을 읽는 게 얼마나 화가 나고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 같다. 자신이 받은 학대를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가족들 품으로 회귀하려는 타라 때문에 진이 빠지기는 한다. 소설이 아니기에 속이 다 후련해지는 복수나 통쾌함도 없다. 타라의 상처는 드라마틱하게 낫는 게 아니라 드라마틱하게 곪다가 터지다가 회복됐다가 곪기를 반복한다. 모든 현실 속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위로가 되는 건 타라가 지금도 배워가는 중이고 계속해 성장해가고 있으며 가족과 자신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두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는 점이었달까? 16세까지 학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아이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웨스트오버 박사가 됐다. 2019년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의 한 명으로 뽑혔다는 소식도 있다. 작가와 관련한 소식마다 눈이 부시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라는 질문 앞에 이제는 <바로 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타라가 세상에 전파하는 배움의 특별한 의미, 특별한 발견들을 앞으로도 쭈욱 응원하련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서평단으로 참여해 지원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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