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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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지원도서입니다.

 

 

 

음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일리아스 때문이었습니다. 헬레네와 파리스 관련하여 헤로도토스가 호레모스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일리아스-오뒷세이아-아이네이스-역사. 천병희 역자의 번역책 몇 권을 순차적으로 밟아 유종의 미로써 역사를 완독하려고 했는데요. 내돈내산 아이네이스를 읽는 도중 들려온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깜짝 지원 당첨! 남의돈남이산 도서부터 얼른, 후딱, 읽는 게 서평단의 예의이므로 아이네이스 잠시만 안녕!

기원전 5세기에 쓰여진 책이라는데 몇 몇 구절 빼고는 거의 온전한 상태로 후대로 전해진 책이에요. 천병희 역자님의 번역서에도 세 문장 정도에 단어 몇 개가 지워져 있을 뿐. 그마저도 주석으로 어느어느 단어가 쓰여 있었을 것 같다는 연구자들의 추측을 실어놨더라구요. 1, 2백년 전도 아니고 기원전 5세기 전이라는 피부로 실감도 안나는 아주 옛날의 책을 그 때 그 시절 독자들과 똑같이 공유한다는 기분은 고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빼놓을 수 없는 감동 중의 하나에요. 총 9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이는 헤로도토스의 구분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의 문헌학자 사모트라케의 아리스타르코스에게서 비롯된 관행이라고 해요. 헤로도토스를 연구한 학자요 사서인데 이 분 역시도 어마어마하게 옛날분, 기원전 3세기 사람이래서 놀랐어요. 현대 작가들이 아내와 가족 또는 고마운 분들께 책을 바친다고 서문에 쓰는 것처럼 헬레니즘 시대에는 시가의 여신들인 아홉 여신들에게 각 권을 헌정하는 문화가 있었던가봐요. 좀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떠오르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앞선 음유시인 호메로스는 아예 서사시의 시작부터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하고 무사 여신들을 졸랐다는 거. 나한테 영감도 많이 주시고 기억도 일깨워 주십사 하고 빌었던 그 문화가 내도록 이어진건가봐요. (덧: 아리스타르코스를 검색하면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겸 수학자가 떠서 착각할 수 있는데 동명이인입니다.) 천병희 역자의 책에는 9권 속 내용들에 다시 제목도 붙여져있어요. 이또한 원전 역사 속에는 없는 부분입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역자님의 배려라지요.

여기까지 제 리뷰를 읽으신 분은, 몇 안되시겠지만, 리뷰인데!! 어째서 책 내용보다 중언부언 책 그 밖의 이야기가 많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아는데 이건 지인짜 어쩔 수가 없습니다. 911 페이지의 역사 이야기를 도저히 어떻게도 요약을 못하겠어요 엉엉. 제가 본래 줄거리 위주로 리뷰를 쓰는 사람인데 거의 한 시간을 책에 그어놓은 밑줄들만 살피면서 모니터 앞에서 멍 때렸단 말이죠. 소개가 도무지 불가능해서 <역사>의 서언을 옮겨 쓰는 걸로 내용의 이야기는 대신 할게요. 궁금하면 읽어보란 말이죠! 리뷰 까짓 패스하란 말이죠! ㅋㅋㅋ

"이 글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 보고서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 (p24) 제가 완독해서 알잖아요. 진짜 이런 내용 맞습니다. 서언의 목적을 그대로 살려서 엄청 잘 쓰셨더라구요. 푸흐흐흐흡, 누가 누구를 평가하냐며 비웃는 소리 다 들리거든요?? ㅋㅋㅋㅋ 쓰면서도 부끄럿. 아, 미추어버리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 헤로도토스가 여행을 다니며 (그 시절 누구보다 많은 여행을 다닌 사람이래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사료를 모으고 자료를 추가추가하며 쓴 책이라서 그런지 인물들이 낯설다는 것 외에는 아무 부담 없이 읽히더라구요. 역사서보다 옛날 이야기책 느낌? 한 사건에 대해서도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쓰는 게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 적대적인 관계였으면 양편 시민들이나 사제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쓰구요. 여행객들을 만나 정보를 모으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사서치고도 뭔가 쏘쿨해요. "본인도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쪽 이야기를 더 믿고 싶다"거나 "들은 대로 전하기는 하는데 믿고 말고는 독자 너희 알아서 해라"거나 "이야기가 두 갈래인데 믿고 싶은데로 믿어라"거나 "내가 가진 정보가 여기까지라 더 얘기 못한다"거나 "이건 여담이지만 변명하지 않겠다"거나 어떨 때는 "내 주장은 이런데 사실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실 적도 있구요. 또 종종은 기원전은 기원전이구나 싶은 엉터리 정보가 실려있기도 해요. 이를테면 사자는 일생에 단 한마리만 새끼를 낳는데 그 이유는 뱃속의 새끼 사자가 발톱으로 자궁을 긁어서이며 산토끼는 임신 중에도 새끼를 밴다거나 하는거요 ㅎㅎㅎ

이오와 에우로페, 메데이아와 헬레네 등의 신화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뤼디아의 왕 크로이소스, 캄뷔세스, 다레이오스, 크세르크세스 (영화 300의 페르시아 황제 크레스크세스 맞습니다!)로 이어지는 광활한 시간이 딱 한 번 읽는 것으로 머리속에 콕콕콕 박히고 이해가 되고 지식이 수리술술 쌓이면 더할 나위가 없는데 실상 내용을 다 파악하지도 못했을 뿐더라 숱한 영웅들과 군주와 전사들과 예언가들과 그 자손들의 방대한 이름 앞에 잠깐 좌절도 했고 재미났던 사건사고와 전투들이 인물-시간과 알맞게 맞물리지 못한 채로 머리속에서 빙빙 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독 자체는 정말 어렵지 않았다는 점!! 열두번 강조해도 부족하죠. 역사 속 무수한 비극과 희극, 말도 못하게 기이하거나 새로운 풍습들, 신화 속 영토와 예언이 역사로 실현되는 기이하고도 판타지 같은 이야기들이 미처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도 정말정말 재미나구요. 감동적이거든요. 완독의 감격으로 읽을 당시의 느낌을 착각하는 그런 거 1도 없이, 종종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있다는 걸 부인하진 않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아요. 찐재미! 천병희 역자님 번역책이 이번이 네 번째인데 가독성 정말 좋고 이름들 제외하고는 서술이 입에 쫙쫙 붙습니다. 고유명사 표기는 현대의 것으로 가면 안되나 하는 생각을 앞서서부터 해오곤 있지만, 이를 테면 뤼디아, 올륌포스, 스파르테인, 스퀴타이족 같은 거;;. 몇 권 읽었다고 눈에 익어서 그런지 이번엔 낯설지도 않더라구요. 아이네이스를 끝으로 올해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는 이만 접으려고 했는데 따악 한 권만 더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까지는 읽으려구요. 헤로도토스의 저서도 읽었는데 투퀴디데스도 당연히 완독 가능하겠죠??? 인류 최초의 역사서를 다 읽고 책장에 꽂으며 느낀 뿌듯함 자랑하는 리뷰였습니다. 축하해 주셔도 되요. 축하해 주심 (솔직히) 더 좋아요 ㅋㅋ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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