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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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지원을 받아 읽은 도서입니다.

 

 

읽는 내내 너무너무 화가 났어요.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다 비호감!! 가가 형사 빼고 가가 형사 사촌인 마쓰미야 형사 빼고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야마모토 일가는 한놈씩 붙들어서 다 패버리고 싶었습니다. 증말 한심하다 한심하다 이런 한심한 꼬라지의 가장에 아내에 자식을 처음 보는 건 물론 아니지만, 완전 처음 같은 느낌으로 새롭게 분노하게 되는 필력을 히가 횽님이 뽐내고 계시더라구요. 누구는 돈 많으면 언니고 잘 생기면 오빠라는데 저는 작가님이 글 잘 쓰니 횽님하고 싶습니다. 당연한 것 같지만 이거 정말 어려운 거잖아요. 존경해야죠 ㅋㅋㅋ

야마모토는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사무실 책상 앞을 붙박이 중입니다. 다음 주 주말의 회의 자료를 퇴근까지 미뤄가며 붙들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회사가 엄청 좋아서? 하는 일이 꿀맛 같아서? 아니오. 집에 가기 싫어서요. 치매에 걸린 연로한 어머니를 보살피느니 잔업수당 1원 한 푼 못받아도 사무실에서 버티겠다는 거죠. 울상인 아내의 잔소리와 아버지를 우습게 보는 아들하고 얼굴 마주하느니 퇴근 안하겠다 이겁니다. 친한 동료를 붙잡아 어떻게 술이라도 한 잔 마시려 했더니만 친척이 온다나 어쨌다나. 별 볼 일 없이 한숨만 푸욱 내쉬고 있는 그에게 문득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와요. 아내 야에코의 다급한 목소리. 그는 내심으로 바랬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해주었으면. 죄책감을 뛰어넘는 해방감으로 다가왔던 아버지의 사망처럼 그를 안도하게 하는 소식이었으면. 도리어 어머니의 생존과 어머니의 치매를 감사하게 느낄 그런 사건이 발생한 사실도 모르고서 말이죠.

남들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부모 앞에선 행패 부기릴 서슴치 않고 할머니를 쓰레기 취급하는 야마모토의 아들 나오미. 이제 중학생 밖에 안된 새파랗게 어린 노무 시키가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애를 죽입니다. 나오미는 일찍이 소아성애의 기미를 보였고 야마모토도 이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내 아들이 그런 변태노무 시키인 것을 믿고 싶지도 않았고, 도무지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도 모르겠기에 마냥 외면해 왔죠. 가정에 아무 에너지가 없는 야마모토는 무슨 일이 생기건 나만 모르게 해라는 심경으로 가족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들에서 한 발 물러섭니다. 하나뿐인 아들이 마냥 짠해 전전긍긍인 야에코는 다 큰 애를 우리 아가라고 부르면서 어르고 달래기 바쁘구요. (이 부분은 뭐... 실은 저희 엄마도 아직까지 저를 공주야 라고 부르시는 터라 뭐라 욕은 못하겠...큼큼) 야에코 때문에 진짜 기막혔던 장면이 하나 있는데 나오미가 살인 사건을 저지른 그날 새벽에요. 야마모토가 여자아이의 시체를 버리려 집을 나선 후에 나오미가 배고프다고 엄마를 찾았는가 봐요. 제가 야에코면 기막히고 코막혀서 너 죽고 나죽자 했을 것 같은데 한창 나이인데 낮부터 아무 것도 못먹은 내 새끼 짠하다고 함박 스테이크를 만들어요. 나오미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만들려고 낮에 장 봐온 게 있었거든요;;;; 이 집 진짜 정상이 아니죠???

나오미는 뭐하고 있었냐구요? 짜증을 버럭버럭 내며 자기 방에 처박혀 게임 삼매경. 그 나름의 현실 도피 수단이었겠습니다만 죄책감이라는 걸 느끼는 놈이면 한 접시 팍팍 비우는 식욕을 보이진 않았겠죠? 야마모토도 처음부터 시체 유기를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엔 아들을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하긴 했죠. 아내가 가위로 자해를 하려는 소동을 벌이고 또 그 사이 살인 사건이 세상에 노출됐을 때 감당해야만 하는 비난들이 문뜩 떠오른 거에요. 살인을 저지르고도 회피하기 바쁜 나오미의 성격은 애초에 야마모토로부터 물려받은 걸로 봐야겠더라구요. 아이를 공원 화장실에 버리며 사건을 은폐한 일만으로도 너무나 큰 죄인데 여기에 더해 야마모토는 하지 말아야 할 또 한가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런 야마모토의 수상함을 한 눈에 눈치챈 가가 형사는 사건의 얼개를 금새 풀어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달라며 수사권한을 가진 마쓰미야를 설득해요. "이 집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어. 이건 경찰서 취조실에서 억지로 실토하게 할 이야기가 아냐. 반드시 이 집에서 그들 스스로 밝히도록 해야 하는 거야."(p261) 어떻게 보면 좀 억지스러운 결말일 수 있겠으나 모르겠습니다. 저는 재미만 있으면 이런 억지스러움도 용납이 되는 편이라서요 ㅋㅋ

<붉은 손가락>은 본래 2000년에 간행된 단편집 <거짓말, 딱 한개만 더>에 수록될 예정이었대요. 이후 살을 보완해 장편으로 거듭났는데 2020년에 읽는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없잖아 식상한 느낌이 있기는 합니다. 이미 여러 사회파 추리 소설에서 주제로 삼았던 내용이다 보니 소재가 지나치게 익숙하거든요. 치매, 장기요양, 노인 소외 등의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과 왕따 등으로 인해 사회성이 결여된 청소년들의 범죄, 그로 인한 가족간의 갈등. 인물들의 성격도 아주 전형적이어서 파탄난 가정의 아버지답고 어머니답고 아들다운 성격을 고스란히 찍어 박아놨는데 신기한건요. 상투적이라 지겨운게 아니라 와! 이 익숙한 소재로도 가독성을 뽑아내내?? 감탄하게 된다는 점이랄까요. 짬짬이 등장하는 교이치로 가의 묵은 갈등도, <기도의 막이 내릴 때>를 읽은 독자는 다 어느 정도 아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한번 더 뭉클하니 맴이 애렸습니다.

표지의 붉은 손을 자세히 보면 손가락들이 다 떨어져있거든요.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의 가족들 중 아무도 마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없고 아무도 서로에게 기대고 있지를 않아요. 누구의 붉은 손가락인지 어째서 붉은 손가락이었는지는 책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라며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엄지 척 해봅니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하나 같이 재미있고 순식간에 읽혀서 오락책으로써는 정말 손색이 없어요. 개정판 현문 가가는 표지까지 예뻐버려서 양손 엄지 척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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