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을 찾아서 책을 펼칩니다.
2016년 5월에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여행한 양국희 작가님의 추억 앨범인데
초록 지붕이 너무나 익숙해 처음 만나는 책, 처음 만나는 그림 같지가 않았습니다.
앤이 그려져 있진 않지만 저 길 한가운데서 활짝 웃고 있는 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는 걸요.
꼭 내가 뛰어놀았던 길 꼭 내 친구의 집만 같습니다.
앤의 프린세스 에드워드 섬은 어느 한 독자의 풍경이 아니라
앤과 함께했던 우리 모든 독자들의 추억의 풍경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앤의 소녀 시절을 사랑했던 한국의 또다른 소녀는 어른이 되어 앤의 고향을 찾습니다.
결혼을 했고 선생님이 되었고 여행가라는 직업을 가졌고 공군에 아들을 입대시킬만큼 성숙한 마음에도
어릴 적 만난 앤의 기억은 또렷하기만 해서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은 내내 설렘으로 흐릅니다.
그 설렘을 글자뿐 아니라 작가님이 손수 그린 지도와 여권과 백팩의 그림으로 맛보며 저도 함께 두근두근.
혼자서 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진초록 나무들, 붉은 흙의 들과 해변"(p14)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이나 소설 속의 묘사로 상상했던 것과는 또다른 느낌의 삽화들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그린 게이블의 표지판만 봐도 꿈꾸던 곳에 당도해 간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던 작가님.
크고 작은 헛간을 지나 초록 지붕 집 앞에 서서 콩콩콩 뛰는 가슴을 느꼈다는 작가님.
가문비 나무와 자작나무, 전나무와 벚나무, 노란 개나리 활짝 핀 정경을 작가님의 글로 읽으며
앤과 마릴라 아주머니와 메슈 아저씨와 다이아나를 떠올립니다.
제 눈으로 본 건 지면의 활자뿐임에도 아득하게 먼나라
실제하지도 않았던 시간의 소리들이 들리는 것만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건
제가 앤을 너무 좋아해서일까요?
아니면 앤을 향한 작가님의 애정이 제 마음에 반사된 탓일까요?
부럽다, 부럽다, 넘넘 부럽다.
예쁘다, 예쁘다, 넘넘 예쁘다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앤을 여전히, 아직까지도 좋아한다는 사실이 가끔 쑥스러웠는데요.
아직은 한참 더 설레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몽글몽글 마음이 뿌듯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