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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ㅣ 이탈로 칼비노 전집 9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2월
평점 :
민음사 이탈로 칼비노 전집 9번째 책이다. 마르코 폴로와 원나라의 시조 쿠빌라이 칸의 대담집인데 주인공을 보고 우리의 선조들 4부인가 잠깐 혼동도 했다. 우리의 선조들과는 스토리를 구성하는 방식이 확연히 다르기는 하지만 역사적 인물, 환상적인 도시에 대한 묘사 때문에 잠깐 그랬다. 선조들 3부작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는 그 어떤 사건도 없다. 그저 베네치아에서 건너온 젊은이 마르코 폴로의 도시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듣는 쿠빌라이 칸의 의문, 이 의문에 대한 마르코 폴로의 현자 같은 답이 있을 뿐이다.
여행자들에게 아주 독특한 기억을 남기는 지르마라는 시가 있다. 여행객들은 도시 첨탑 사이를 나는 비행선을 단 한 대 밖에 본 적이 없음에도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창밖을 날아다니던 무수한 비행선을 기억한다. 전철 승강장에서 부채질 하는 단 한 명의 여인만을 보았을 뿐인데 정작 그들 머릿속에 떠오르는건 무더위로 숨도 못쉬는 여인들로 만원이 된 전철이다. 마르코 폴로는 얘기한다. "기억은 필요 이상의 것들로 넘칩니다."(p31)
에우트로피아에는 여러 많은 도시들이 존재한다. 그곳 시민들이 도시를 살아가는 방식은 기이하다. 어느 한 사람이 도시 안팎으로 들고 나며 이사를 하는 것이라 아니라 도시 주민 전체가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주하며 사는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피로를 느낄 때, 자기 직업과 친지와 집과 거리와 의무와 아내와 남편을 더는 참아줄 수 없을 때 텅 빈 상태로 자신들을 기다리는 도시로 옮겨간 그들은 새 도시에서 새 집과 새 남편과 새 가정과 새로운 풍경을 갖게 된다. 다만 그들의 사회가 부나 권력을 큰 차이없이 정비하기 때문에 마치 등장인물만 바뀐 똑같은 영화의 상영 같은 모습으로 진행된다. 다시 무언가를 참을 수 없어지는 때가 오면 그들은 텅빈 어딘가의 도시로 또한번 삶을 옮겨가리라.
마르코 폴로가 방문한 다양한 도시의 모습은 실제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방문한 호수에서 돌을 매고 자살한 시체들이 떠다닌다. 개들이 그런 시체들의 눈을 뜯어 먹고 있다. 땅에 수직으로 긴 구멍을 파기만 하면 어디서든 물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땅도 방문한다. 육지로 오는 사람과 바다로 오는 사람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도시도 있다. 이렇듯 계속되는 55개의 도시 이야기는 읽다 보면 당연하지만 모든 것이 가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도시 속 숨은 기호와 기억, 지속성과 과거와 미래와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상징일 따름이다. 애초에 원나라의 황제와 마크로 폴로의 시대에 비행기와 전철을 볼 수도 없느니만큼 당연한 얘기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마르코 폴로가 그려낸 보지지 않는 도시들을 향하여 짐을 꾸리고픈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