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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범한 밥상 - 박완서 대표중단편선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정세랑 작가가 말했다. 박완서 소설가는 한국어로 소설을 읽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언제까지고 읽힐 것이라고. 언제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던 작가님의 소설들을 문학동네 박완서 대표중단편선으로 만나며 정세랑 작가의 말을 실감한다. 시대가 변한대도 작가님이 차려낸 이 대범한 밥상을 받으면 그저 물릴 독자는 없으리라고. 때때옷을 갈아입고 등장하기만 하면 넙죽 몸을 일으켜 감사히 상을 받을 독자가 숱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대범한 밥상을 차지한 열 편의 찬은 아래와 같다. 부처님 근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엄마의 말뚝 2 (1편도 있습니까?), 아저씨의 훈장,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너무도 쓸쓸한 당신, 대범한 밥상. 작가정신에서 출간된 단편선 "나의 아름다운 이웃"과는 또다른 맛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맛의 찬들이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 콩트를 지향하며 우습고 따뜻하고 그래서 얼핏 좀 하찮아도 보이는 70년대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재미있게 맛봬기 한다면 대범한 밥상은 주요 배경이 6.25이다 보니 글의 무게 자체가 나의 아름다운 이웃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한 숟갈 한 숟갈이 맘 편히 떠먹기에는 알알이 거칠고 입에도 쓰고 혀는 따갑고 목 매이는 구석이 많은 한 많은 어머니들의 삶이 골자였던 것이다.
86세의 노모가 저승사자라도 보는 줄 알고 덜컥 겁을 먹었던 딸은 "이노옴, 게 섯거라. 이노옴, 나도 죽이고 가거라 이노옴."(p212)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가슴이 무너진다. 틀니를 빼 쭈글쭈글해진 잇속으로 벅벅 이를 가는 시늉을 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모친의 눈앞에서 그녀의 오빠가 죽어 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인민군에 있다가 도주한 후 빨갱이로 몰려 갖은 고초를 겪었고 시민권이 없어 피난도 옳케 가지 못한 오빠는 반병신이 되어 보위부 군관의 총에 맞아 죽는다. 모녀는 핏줄을 땅에 묻지 않았다. 한줌의 가루로 바닷가에 훨훨 날려보냈다. 운명에 순응해서가 아니요 한을 품고 삭이기 위해서도 아니요 분단에 대한 도전으로써 감내한 선택이었다. 어머니는 아들과 똑같은 끝을 맞게 해달라 딸에게 유언한다. 친아들은 북한에 아내와 함께 남겨놓고 형님의 아들을 지게에 짊어진 채 피난길에 오른 남자의 종말, 제딸을 양갈보시키지 못해 안달난 어머니의 등쌀과 어머니의 나이쯤 되어 어느덧 그 어머니처럼 부끄러움을 잊고 살았음을 깨닫게 된 딸, 숫총각이 가장 먼저 총 맞아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 같은 군인에게 하룻밤을 내어준 노파의 웃음띈 얼굴, 전쟁통에 남자들이 모두 떠나간 마을에 들이쳐 양색시를 찾는 미군들과 그들에게 답싹 안겨간 또다른 노파의 밤, 13평 아파트를 받기로 하고 영감의 후처로 들어가 똥오줌을 다 받다가 아파트는 커녕 달랑무 꼭지로 눈칫밥만 먹고 집을 나오게 된 부인의 엉덩이 들썩들썩해지는 걸음, 6.25 동란 중에 서울 변두리에서 산부인과를 개업해 평생을 소파수술에 전염한 여의사가 병원 문을 닫기 전 꼭 한번 받기를 희망했던 생명, 빨갱이로 죽은 남편과 아들을 전쟁통에 실종된 것으로 묻어두고 산 모녀가 그들을 부처님 전에 모신 어느 하루. 어느 한 가지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어서 밥상도 그냥 밥상이 아니라 대범한 밥상을 차려야 했는가 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범한 밥상 위의 단편 속에는 구수하거나 정답거나 단정하거나 다정하거나 따뜻한 찬 같은 것은 아예 없다.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거나 땀으로 눈물로 바글바글 끓여 소태 같거나 뗏국물이 자글자글 한 것에 그 만들어진 모습을 다 보고 나니 정말로 먹고 싶지가 않아져 눈 딱 감고 삼켜야 했던 찬들이 다다. 단편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여성인 주인공들은 눈시울 붉히게 하는 모성과 동시에 찔찔하거나 얌체 같아 불편한 속물근성을 안팎으로 숨기지를 않는데 그 모습이 안타깝고 창피하고 몰골이 송연해지는 맛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쨍하다. 울적한 이야기들에 틀림없는데 왜 이토록 눅눅함 없이 카랑카랑한지, 이것이 모두 문장 때문인지 뭔지 이유를 모르겠다. 같은 여성으로서 자기 비하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뱃심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까닭도 영 알지 못한다. 모르면서도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