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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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호랑이에 이어 이번에도 동물이 제목에 등장합니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작가님과는 두 번째 만남인데 이럴 수가! 한국판 오리지널 SF 단편집!!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발매된 소설이다, 그 얘기인 거죠? 맞죠?? 한국 독자들의 사랑이 꽤 열렬했던걸까요? 괜스레 기분이 좋아집니다. 총 12개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인데 보통은 제일 재미있는 단편을 제목으로 꼽잖아요. 제목의 작품부터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p243ㅠㅠ 넘나 뒤에 모셔져 있음ㅠㅠ) 정성주 엮고 옮김이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고는 순차대로 밟았습니다. 이렇게 엮으신 이유가 있겠거니, 다 읽은 지금은 별 이유가 없었나 싶지만, 처음엔 그랬어요.

12편의 소설 속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몇 백년을 젊고 건강한 상태로 살 수 있게 된 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며 아이를 버리고 달아난 미혼모가 부유한 사업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유전자를 조작해 영생의 기회를 얻고 100년 후 마지막 출산을 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렸는데요. SF + 미혼모의 소재가 독특해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골드러시 시대 아이다호에 정착했던 중국인들 이야기 속에는 관우와 쏘옥 닮은 남자가 등장합니다. 이름은 로건, 팔척장신에 힘이 아주 세서 돌팔매질로 총을 든 백인 남자도 죽일 정도죠. 그가 릴리에게 들려주는 관우의 삶이 엄청 재미났어요. 켄 리우가 삼국지를 출간하면 곧장 서점으로 뛰어가겠다 결심했을 정도? 우주에서 지구로 자유롭게 우주선이 오고가는 시대에도 불치병이 있는가봐요. 남은 시간이 2년여 밖에 없는 에이미의 엄마는 딸을 위해 우주선을 탑니다. 우주선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우주선 속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거든요. 2년의 시간도 우주선 안에서라면 80년쯤 거뜬히 늘릴 수 있어요. 7년에 한번씩 에이미를 만나러 오는 엄마는 엄마 나이쯤 들어버린 에이미를 엄마보다 더 나이들어 버린 에이미를 죽음을 앞둔 에이미를 꼬옥 안아줍니다. 여든 살 에이미와 엄마의 포옹에 눈물이 주륵주륵. 종이 동물원과 비슷한 정서의 단편이었어요. 구름을 지나 찌르레기와 참새떼를 뚫고 오른 달, 아니 달나라 같은 미국에서 장선생이 들려주던 이야기의 결말도 궁금하구요. 제목의 단편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 많은 순록 떼가"가 담긴 싱귤래리티 3부작 소설들도 어려운 듯 잘 이해가 안가든 듯 그래도 좋은 그런 심정으로 읽었어요. 정신을.. 어쩌면 영혼일까요? 가상의 공간에 업로드한 신인류와 이전의 신체를 고스란이 보유한 고대인의 이야기. 삶만큼 죽음이 중요하다는 고대인들과 죽음 없이 영원토록 살며 자원을 낭비하지도 공간을 두고 전쟁을 치르지도 감정을 허비하며 흐트러지지도 않는 물성없는 신인류의 대조가 흥미로워요. 먼 과거 모스크바로 불리운 어느 언덕의 순록떼를 보며 르네의 엄마가 들려줬다는 W.H.오든의 시도 찾아봤는데요. 없어요. 없습니다. 오든 시선집은 검색이 되는데 로마의 멸망은 깜깜. 잊지 않고 서점에 가서 찾아볼요.

과학 소설, 판타지 소설, 사변 소설로 분류되는 당신의 글들에 대한 소회를 작가는 책의 앞머리에서 가장 먼저 짚고 갑니다. 도래할 리 없는 미래에 관해 쓰고, 확대경 혹은 필터로써 독자에게 쓰이기를 희망하며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쫓는다구요.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단다 라는 우리 속담처럼 어렵고 힘들어도 살아남기를 꿈꾸고 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님의 마음이 시작하는 소설부터 마무리 되는 소설까지 꽉꽉 담겼습니다. 동양적인 정서와 소재가 어우러져 더욱 맛깔나는 SF 소설, SF가 좀 어려운 독자에게도 가뿐히 추천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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