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피난짐이 꾸려진다. 쇠고기 들어간 아침 떡국이 한김 식기도 전에 콰광, 쿵, 먼 하늘에서 포탄 소리가 들려온다. 경주의 고존 사촌 오빠가 화급히 뛰어와 소식을 준다. "곧 남쪽으로 내려갈 배가 들어온답니다. 당장 안 가면 큰일나요!"(p26) 이곳은 함경남도 흥남시 용흥리 1구. 후퇴하는 연합군의 배에 오르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부산하게 가족들을 챙겨 짐을 지고 나오던 어머니가 문을 걸어 잠그기 전 화급히 밥상머리를 짚는다. 가족들의 수저를 한손으로 휘이 감아 짐꾸러미에 챙겨넣었다. 어쩐 일인지 덩그러니 놓인 밥상이 마음에 걸려서. 그 장면에서 괜스레 코끝이 찡한 건 왜인지 모르겠다.
한 개 나라가 반쪽으로 나뉘어 총구를 들이밀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리거나 젊은 장정들이 누구는 인민군이 되고 누구는 국군이 되어 영문도 모른 채로 적이 되었다. 경주의 오빠처럼 인민군 입대를 피해 다니며 변을 면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 수가 얼마나 되었으랴. 날리는 눈발에 짐과 아이들을 이고지고 고향을 빠져나온 양민들이 사방 길을 채운 피난길. 두렵고 춥고 허기진 그 길 위에서 어느 집은 아이를 잃어버렸다. 어느 집은 총을 맞았다. 어느 집은 가장을 빼앗긴다. 먼데서 들려오던 총소리는 한층 가까워지고 생사의 기로에서는 슬퍼할 넉넉한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아이를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도 온다. 부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기를 희망하며 어떻게든 살아있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살 수 있는 길 재회할 내일을 찾아나선다. 그런 모든 혼란이 먹그림과 결이 곱고 다정한 만화 그림으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험난한 전쟁사 읽다 보면 먹먹한데 와중에도 웃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아이들 때문이었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경주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빅토리호의 귀환 사흘 이상으로 귓전을 환하게 만드는 기적이었다. 고향을 잃은 많은 피난민들이 더불어 이렇게 웃는 날이 꼭 왔으면 좋았을텐데.
195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한국전쟁의 흥남철수작전을 배경으로 작가 홍지흔의 가족이 실제로 겪은 일에 가상의 인물들을 설정하여 쓰여진 이야기다. 경주 가족이 일만 사천 명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어떻게 오를 수 있었는지, 잃어버린 줄 알았던 가족들과 어떻게 재회했는지, 흑백 같은 전쟁의 풍경을 뒤로하고 거제도에서 마주친 청보리 밭이 어떤 심상으로 다가왔는지, 애기 머리통만한 하얀 꽃이 맞아주던 거제도에서의 거짓말 같은 봄과 미래의 꿈을 차근차근 풀어간다. 한국전쟁 70주년. 길어야 삼 개월이면 끝나리라 예상하며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70년이 다되도록 떠나온 옛집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있다. 긴 세월 오래오래 기다려온 그들에게 소중한 옛집 그리운 얼굴들을 찾아주고 싶다고, 불행한 역사 속에서도 크고 작은 기적들을 일구며 살아온 민초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가능했음을 새삼 느끼며 감사하다고, 레너드 선장과 선원들에게 고마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홍지흔의 만화 <건너온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