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 그래픽노블
머라이어 마스든 지음, 브레나 섬러 그림, 황세림 옮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소녀가 기차를 타고 아담한 초록 마을 에이번리에 당도합니다. 초록 지붕집의 남매 매슈와 마릴라 커스버트씨가 집안일을 도울 아이를 구했기 때문이에요. 두 사람이 요청한 건 힘세고 튼튼한 사내아이였는데 간이역에서 매슈를 기다리는 건 수다쟁이 고아 소녀 앤. 매슈의 당혹스러움을 말해 무엇할까요. 수줍고 점잖은 매슈는 아이에게 어떤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고 조심스레 마차를 몰아 기쁨의 하얀 길과 빛나는 호수를 건너 초록 지붕집으로 앤을 데려갑니다. 다음 날 마릴라는 스펜서 부인을 방문해 오해를 풀고 앤을 보낼거라 호언장담 하며 집을 나섭니다. 초록 지붕 집에서 원한 아이가 자신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앤도 그즈음에는 마음을 다잡고 얌전히 마릴라를 따라나서요. 심술궂은 블루엣 부인은 쌍둥이를 키운 적 있는 앤을 탐내지만요. 무뚝뚝해도 잔정이 많은 마릴라는 앤 같이 어린 여자아이가 블루엣 부인의 집에서 학대와 다름없는 노동을 하는 일이 탐탁치 않습니다. 결국 마음이 약해져 스펜서 부인댁에서 도로 앤을 데려오고 말지요. 앤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집 같은 집, 우리 집, 내 방이라 말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게 되요. 그리하여 마릴라에게 고백하지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장소를 사랑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전 그래요! 초록 지붕 집은 제 집이에요."(p47)

친구라고는 토마스 씨 댁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이름 붙인 수줍음 많은 케이티 모리스나 해먼드 씨 댁 강가의 메아리에게 이름 붙인 비올레타 뿐이었던 앤이 다이애나라는 절친을 사귑니다. 새옷을 받고 소풍을 가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학교를 다니고 다정한 친구들과 들판에 앉아 수다를 떨고 노래하는 일, 온통 처음인 일들이 초록 지붕과 그 문을 열고 나가 만나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 위에 가득 펼쳐져요. 책 속 가득한 앤의 설렘에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의 가슴까지 벅차더군요. 앤이 길버트의 머리에 석판을 깨부시는 명장면(?)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지도 궁금했는데요. 소설과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박진감 넘치는 화통한 장면은 여전하더군요. 제 머리가 다 아픈 느낌이었어요. 선생님의 말씀을 어겨 길버트의 옆자리에 않는 장면, 다이애나에게 딸기주스 대신 술을 먹여 배리부인에게 만남을 거절 당하는 에피소드, 케이크에 바닐라 대신 진통제를 넣고, 조세핀 베리 여사가 잠든 침대에 다이애나와 함께 뛰어드는 순간, 가슴이 터질 듯이 긴장되던 학예회 발표날들이 하나같이 사랑스럽게 표현되어 있었어요. 티비 만화로 또 소설로 다양하게 접하고 상상해왔던 앤이지만 그래픽노블의 삽화들은 또다른 예쁨! 이번 앤도 정말이지 좋았답니다.

고전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의 즐거움 중 하나는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된 다양한 판본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 같아요. 빨강 머리 앤만 해도 오디오북 앤, TV 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앤, 만화로 보는 세계명작애니메이션 앤, 초판본 앤, 앤 그림 에세이, 컬러링북, 다이어리북, 앤이 하는 말 등으로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거든요. 똑같은 내용이라도 표지와 삽화, 번역이 달라지면 앤을 읽는 맛도 달라져서 재독, 삼독, 오독을 멈추지 않고 거의 매년 앤을 만나오고 있는데요. 이번엔 생에 처음으로 그래픽노블 빨강 머리 앤을 만나 여태와는 정말 다른 느낌의 색다른 앤과 인사할 수 있었습니다. 머라이어 마스든 각색, 브레나 섬러 일러스트가 몽고메리의 원작을 거들었는데요. 원작의 맛을 잘 살리면서도 약간의 개성을 곁들여 앤을 만나는 즐거움을 더한 것 같아요. 원작소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뭐니뭐니해도 시간? 앤이 생각보다 두께가 있는 책이라 완독에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인데요. 그래픽노블은 만화책이다 보니 원작소설보다 읽는데 들어가는 시간적 공이 훨씬 덜하더라구요. 두 번째 차이점은 각색자의 취향에 따라 편집되다 보니 자잘하게 생략된 내용이 많다는 거? 다른 독자들은 원작의 어떤 점을 재미있게 느낄까 인상적으로 기억할까 궁금했던 적이 있는데요. 머라이어 마스든 각색을 읽으며 그 부분을 짚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저와 겹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그 차이를 찾아가며 읽는 게 재미났어요. 세 번째 차이점은 그림 작가 브레나 섬러가 앤의 옷에 다양한 색깔을 부여했다는 거였어요. 원작에서는 몇 벌 없는 옷이 다 단색으로 꾸려져있는데 그래픽노블의 앤은 분홍, 노랑, 하양, 하늘, 남색, 녹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거든요. 퍼프 소매의 옷은 여전히 매슈와 린드 부인의 합작품 딱 한 벌 뿐이지만요. 앤이 바라마지 않던 예쁜 색깔의 원피스들을 그래픽노블에서라도 맘껏 입게 되는 점이 저는 왠지 좋더라구요. 앤의 녹색 눈동자를 이번 그래픽 노블 때만큼 선명하게 인식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구요.

초록지붕 집과 앤, 매슈, 마릴라, 린드 부인, 다이애나, 그 밖의 에드워드 섬 이웃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즐거웠어요. 다른 판형으로 다른 역자님으로 다양한 출판사로 앤이 매번 새롭게 태어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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