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 내세에서 현세로, 궁극의 구원을 향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19
박상진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평점 :
일시품절


민음사의 신곡을 번역한 박상진 교수가 단테의 흔적을 쫓아 이탈리아에 갔다. 지옥과 연옥과 천국편에 남은 단테 생의 발자취를 찾아 흘러가는 이야기는 방탕한 작가, 이를테면 알콜중독에 가정폭력범이었던 레이먼드 카버편처럼 자극적이거나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방랑의 작가이자 은둔의 작가였으며 시인이기 이전에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탓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다 좀 딱딱하달까. 신곡을 읽기에 앞서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마중물로 부으면 딱 좋을 책이다 싶었다.

 

정치, 경제적으로 눈부시게 성장 중인 피렌체에서 태어나 도시의 시민으로서의 큰 자부심을 안고 살았던 단테. 공직자로 부임해 시에 공헌하고 기병대로 전쟁에 참여하는 등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명성을 높였다. 그러나 단테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던 당시의 피렌체는 교황권과 황제권의 다툼이 살벌했고 황제의 손을 들어 교황의 야심을 저지하고자했던 단테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의 끊임없는 충돌로 결국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1차 재판 때는 추방이, 추가 선고 때는 화형을 언도받았기에 결코 피렌체로는 귀환할 수 없었던 단테, 그 길 위에서 단테는 생에 새로운 길을 내듯 신곡을 쓰기 시작했다.

 

지성의 상징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단테가 지옥을 도는 동안에 그의 육체는 카센티노의 어두운 숲자락을 지나 파도바에 머물렀다가 다시 카센티노의 숲으로, 베로나로, 라벤나로 향한다. 두어 차례 피레네 복귀를 희망하며 일을 도모하기는 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피렌체는 재차 사형을 언도하며 단테뿐 아니라 단테 자식들까지 죽이겠다는 으름장을 놓는다.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모두 용서해주겠다는데 단테가 일언지하에 거절했으니 아무래도 괘씸죄가 적용된 게 아닐까 싶다. 사후 7년 째엔 이단으로 선포됐다. 추기경은 단테의 뼈까지 태워 재로 날려버리겠다고 위협한다. 하지만 성경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800종의 필사본을 지닌 베스트셀러 작가의 유해를 도시 라벤나도 쉽사리 내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의 유해를 가져가려는 피렌체와 다퉈가며 몇 백년에 걸친 숨바꼭질을 벌이고 700년 넘게 유해를 지킨다. 단테를 품으려는 도시들의 신경전이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한다.

 

단테는 아주아주 오래 전의 사람이다. 1265년에 태어난 작가다 했을 적엔 솔직히 감이 잘 안잡혔다. 1547년생 세르반테스나 1564년생 셰익스피어보다 삼백 년쯤 더 선배 작가인 걸 알고는 조금 놀랐다. 르네상스 시대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인 미켈란젤로가 라벤나에 묻힌 단테의 유해와 유물을 피렌체로 옮겨달라는 탄원서에 이름을 썼다는 구절에 가서야 아주아주 정말로 먼 옛날의 작가라는게 피부에 와닿았다. 그때가 1519년, 날짜는 정확하지 않다지만 단테가 사망한 1321년보다 벌써 이백 년쯤 지난 날의 일이었다. 중세를 대표하는 작가인데 어째서 앞서 두 작가보다 더 젊게 느껴지는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햄릿보다 돈키호테보다 더 옛날의 책을 내가 읽고 있었구나 생각하면 뿌듯하기도 하고. 연옥편 앞에서 멈춤 상태이긴 하지만 지옥편 한권만은 다 읽었으니까.

 

중심 얘기는 아니었지만 곁가지에서 더 재미난 에피소드를 많이 발견했다. 이야기 1. 단테는 약제사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약제로서의 지식은 하나도 없었던 모양인데 약국에서도 책을 팔았던 시절이라 길드에서 단테와 같은 지식인들을 환영했다고 한다. 약국에서 단테에게 책을 처방받은 독자도 있었을까? 2.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상징하는 인물이 다름아닌 단테다. 생각하는 사람보다 앞서 제작된 작품 "지옥의 문에서 바윗돌에 앉아 발끝에 힘을 주고 지옥 풍경을 내려다보며 고뇌하는 단테를 똑 떼어와 따로 제작한 거였다. 3. 단테를 천국으로 이끌었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와는 실제로 연인 사이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생에 마주친 것도 딱 두 번 뿐이었다(고 단테는 쓰고 있다. 아홉 살, 열여덟 살, 그것도 길에서;;). 반면 결혼까지해서 자식들을 낳아 키우고 함께 망명길에 오른 아내에 관해서는 단 한 구절도 글로 남긴 것이 없단다. 4. 1519년부터 1865년까지 단테의 유해는 단테의 무덤 안에 없었다. 사람들은 빈 묘지에 가서 그를 추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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