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사라의 삶에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 캡틴과 말 부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삶의 두 축이 한꺼번에 무너지려 하고 있어요. 공원에서 부와 함께 훈련 후 돌아오던 길 할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버렸거든요. 부에게 축사를 제공하던 친절한 존 아저씨는 축사를 팔고 시골로 내려가려고 준비 중이구요. 새주인은 말로는 괜찮다, 할아버지가 깨어나면 돈을 주면 된다고 하지만 다가오는 손짓이 섬짓섬짓 합니다. 존이었다면 시일이 얼마가 걸리든 임대비와 사료비를 독촉하지 않았겠지만 새주인은 글쎄요.
그런 때에 사라와 너태샤가 만나게 된 거였어요. 병원과 학교와 축사를 오가며 저녁을 쫄쫄 굶고 정신이 반쯤 나가서는 돈이 주머니에 있는지 손에 쥐어져있는지 다른 어떤 곳에 떨어트렸는지 분간도 못할 때였어요. 멍한 정신으로 피시 핑거를 들고 아마 계산도 없이 마트를 나가려했던가 봐요. 사라는 좀도둑으로 오인받았고 경비원에게 붙들려 해명했지만 말이 먹히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후미진 동네라 워낙 절도 사건이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라 주머니에 돈이 없었거든요. 사라는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눈물이 핑 돌 정도였지요. 너태샤는 너태샤대로 그 밤은 멘붕 상태. 별거 중이던 맥이 집이 공동재산임을 명시하며 짐을 싸들고 들어왔거든요. 이제야 맥을 잊고 새로이 애인도 사귀고 삶의 궤도를 좀 수정해보려던 터에 얼굴만 봐도 상처에 고름이 솟고 피가 나는 것 같은 남편과 동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에요. 내가 그간 당신을 배려해 나가 살았으니 이 상황이 불만이거든 집이 팔리기 전까지 당신이 나가 살아줘 라는데야 너태샤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 더 열 받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그 심정. 너태샤 힘내라ㅠㅠㅠㅠ
이 세 사람이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는지 저는 그 과정을 다 목격했으면서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마음이에요. 너태샤 입장에서 보면 남편을 피해 우유를 사려고 평소보다 좀 멀리, 아니 아주 멀리 있는 마트에 갔다가 만나게 된 아이가 사라거든요. 그것도 상냥하고 친절하고 예의바른 아이가 아니라 좀도둑으로 몰린 아이, 도와줬지만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쌩 하고 가게를 나가 버리는 아이, 이름을 속이고 친근해지려는 기색도 없이 묵묵부답 입을 꾹 닫고 있는 아이요. 저 같으면 너무너무 부담스러워서 얼른 자리를 피해버렸을텐데 너태샤는 어른이었어요. 맥과 상의 후 사라를 임시보호 하기로 하거든요. 그녀가 사라와 비슷한 아이들을 변호하는 직업이라서 그럴 수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너태샤와 맥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라 그런거지. 물론 중간중간 내가 미쳤지, 내가 왜 그랬을까, 이 애는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라고 후회할 때도 있지만요. 어쨌거나 사라가 완벽하진 못해도 훌륭한 어른들에게 맞겨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함께 하는 동안 세 사람은 내내로 진력이 납니다. 말을 안해요 말을. 사춘기 아이는 아이대로 입은 뒀다 국 끓여먹으려는지 좁은 시각 안에서 좁은 해결법을 찾아 혼자 다 처리하겠다며 난리구요. 어른은 어른대로 몇 년 더 살았다고 한치 앞은 안다고 자신하잖아요. 분란이 생길 것 같고 자존심이 상할 것 같은 일에서는 먼저 발을 빼버리거나 회피하거나 입을 닫죠. 그럴 수록 문제만 더 커지는 그런 경험, 그럼에도 말하기 싫은 그런 마음 모르지 않음에도 답댑이 답댑이 말 좀 하고 살자 싶었습니다. 툭 터놓고 말을 안하는 인물들 때문에 읽는 내내로 답답하고요. 읽어도 읽어도 줄지 않은 페이지가 초반엔 살짝 부담되기도 합니다. 성장소설이니 기껏 삼, 사백쯤 되겠지 하시겠지만 자그마치 687 페이지 대벽돌이에요. 하지만 걱정마시라. 작가는 책 속에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을 숨겨놓은 게 틀림없습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이 어느 순간부터 나는 듯이 넘어가요. 사라 할아버지 캡틴의 선택과 후회, 축사 주인 조의 바람, 너태샤와 맥의 재회, 가출 청소년의 모험기에서 빠질 수 없는 사라의 가출, 모든 이들의 화해와 새롭게 만들어지는 가족을 들여다보며 문득 행복해집니다. 조조 모예스 작가의 명성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책, 강력추천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