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고흐 :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 전통과 도덕적 가치를 허문 망치 든 철학자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공공인문학포럼 엮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기다리지 못하고 나는 너무 일찍 왔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엄청난 사건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방황 중에 있다. 그것은 아직 인간의 귀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번개와 뇌성도 시간이 필요하다. 별빛도 시간이 있어야 한다. 행위들, 그것이 비록 완성된 것일지라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p292) 마치 빈센트 반 고흐를 위한 찬사인 것만 같이 느껴지는 이 문장은 실은 니체의 것이다. 즐거운 학문에서 따온 구절이다. 니체의 책을 딱 한 번 읽으려 한 적이 있었다. 청화 출판사에서 나온 15권짜리 전집 중에서 콜린 맥컬로 작가의 가시나무 새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쌓아놓고 한 권씩 독파하리라 했는데 딱 한 권 가시나무새만 읽고 짜라투스트라는 시작하자마자 접고 말았다. 6학년도 막장은 알아서 가시나무 새야 술술 읽었지만 짜라투스트라는 시작부터 영 꽝. 그와 함께 베르테르도 완독과는 먼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중학생 때 다시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후로는 니체를 읽을 욕망을 일절 품어본 적이 없다. 어쩌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니체 때문이기 보다 "고흐" 때문이었고 '누구나 한 번쯤 니체처럼 생각하고 고흐처럼 꿈꾼다'는 광고에 호기심이 인 탓이었다.

 

디오니소스의 송가를 제외하고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되는 니체의 저서들은 거의 모두 등장하는 듯 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반시대적 고찰, 이 사람을 보라, 권력에의 의지, 니체 대 바그너, 우상의 황혼, 비극의 탄생, 즐거운 학문, 안티그리스도(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인터넷 서점엔 반그리스도로 검색해야 책이 뜬다), 바그너의 경우,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대하여, 그리스비극 시대의 철학, 도덕의 계보. 가만. 빼먹은 책 없겠지? 희한한 게 책 뒤에 그림 찾아보기 페이지는 세 장이 실려있는데 무슨 책을 인용했는지에 대한 정리가 없다. 일일이 확인하기 싫다면 여기 목록을 참고하시라. 이 책은 제목이 곧 내용인 아주 정직한 책이다. 한쪽엔 니체의 명저 속 명문장들을, 다른 한쪽엔 고흐의 그림들을 싣고 있다. 그림과 글이 전혀 매칭이 안된다는 함정이 있긴 하지만 명작 플러스 명작이 주는 꽃다발 효과 때문인지 양 페이지를 함께 눈에 담으면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고 잘 이해는 안가지만 뭐가 확실히 있어보이는 구절들과 잘 이해도 가면서 퍽 공감이 가는 구절들을 읽다보면 필사에의 욕구도 느끼게 된다. 고흐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보다야 니체의 문장들을 따라 쓰는 것이 훨씬 쉬워서인지도.

 

'전통과 도덕적 가치를 허문 망치 든 철학자 니체'를 잘 알 게 되는 책이라고 하면 니체가 뭥미 하며 뛰어올지도 모를 일. 차마 그의 책을 잡기 무서운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맛봬기가 되는, 매력적인 구절로 니체의 세계로 유혹하는, 본식은 알아서 차려먹으라는 에피타이저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고흐의 그림이야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다 좋아서 뭐라 더 찬양하기 입이 아플 지경이고 다른 책들에서 못봤던 새로운 고흐 그림을 볼 수 있어서 만족. "그게 삶이던가, 그럼 좋다. 다시 한 번!"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한 걸까? 아님 다른 어떤 주인공? 족히 이십년을 돌고 돌아 한참 늦긴 했지만 이제 니체의 책도 만나볼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걸 보면 마중물 책으로도 꽤 적합한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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