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양장)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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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읽었는데도 열 두번은 읽은 것 같이 익숙한 소설 이방인. 번역 논란을 불러왔던 새움의 이방인이 2020년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어 만나게 됐다. 이방인을 요약본 내지는 감상문으로 밖에 만나오지 않았던 나조차 알고 있는 첫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가 이정서 역자의 번역에서는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로 번역되어 있다. 엄마인데, 뉘집 똥개도 아니고 다름아닌 엄마인데, 이 무미건조함은 대체 뭐지? 삭막하기 그지없는 어투가 주는 전자의 강렬한 인상이 새움의 번역에서는 조금 누그러지는 듯도 하다. 하지만 "아니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가 부추기는 다음 문장의 무심함에서 충격은 번뜩 되살아난다. 그리고 연이어 벌어지는 장례식에서도 뫼르소의 침착성과 냉담함은 두드러진다.

눈물 없이, 담배 한 개비와 밀크 커피 두 잔으로 엄마와 일별한 뫼르소. 엄마의 낯 한번 확인하지 않고 한낮의 벌판을 걸어 묘지에 묻은 그는 한숨 자고 일어나 수영을 하고 여자를 만나고 오락 영화를 보며 남녀의 유혹이 주는 긴장감에 들뜬다. 죽은 엄마를 거의 생각하지 않은 채로 일상으로 복귀한다.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았나? 아무 애정이 없는 사이였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은 편린이 뫼르소의 기억에 간간히 나타났다 사라진다. 타고나기를 감정이 희박한 그런 남자였던 것이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무색무취. 내성적이고 인생에 아무 기호가 없는 것만 같은 뫼르소가 아랍인을 쏘았을 적엔 그래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뫼르소의 성향상 상대가 칼을 빼든다 해도 맞대응 할 것 같지가 않았던 탓이다. 뫼르소가 돌아서 달음박질 치는 장면도 떠오르지는 않지만 한 발을 쏘고 잠시 텀을 둔 후 네 발을 연사하는 장면은 다시 떠올려봐도 기묘하다. 그러나 살해 장면에 다다라서도 가장 충격적인 건 역시 첫 문장이다. 이러한 충격은 오직 독자의 몫만은 아니었는데 이후 그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뫼르소는 허벅지를 꼬집어서라도 장례식날 울음을 터트려야 옳았다.

체포되어 수감되고 재판을 받게 된 뫼르소는 말한다. 아랍인을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불쑥 대꾸하기를 "그것은 태양 때문" 이었다고 말한다. 햇빛으로 이글거리는 해변 전체가 주던 압박감, 마치 웃고 있는 것만 같던 아랍인의 얼굴, 지근대던 이마, 피부 밑에서 울리던 정맥, 한 걸음 더 나아가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한낮의 햋볕, 다섯 번의 총성. 뫼르소의 변명 탓에 법정에 웃음이 일 때 나는 그날의 해변을 떠올렸다. 어쩐 일인지 정말로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나는 뫼르소의 편에서 생각했지만 이때까지도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뫼르소의 살인이 정당방위로 해석될 여지 또한 충분하다는 점이다. 해변을 내리쬐는 햇볕에 독자의 시야마저 무너졌던걸까. 불타는 칼, 이미 두 차례 레몽(포주 이웃)의 팔에서 피를 본 그 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역자 후기를 읽고서야 재판 과정 중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칼을 떠올렸다. 그리고 장례식에서 울지 않아서, 모친의 나이를 몰라서, 관 옆에서 담배를 피워서, 모친을 묻고 돌아와 데이트를 했기 때문에 뫼르소를 파렴치한 사이코패스로 몰아가는게 얼마나 합당하지 않은 일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책에서 딱 한 번 등장하는 이방인이라는 단어는 2부 3장, 검사의 입에서 거론된다. "예, 배심원들님께서는 참작하실 겁니다. 또한 이방인이 커피를 제안 받을 수는 있지만, 그 아들은 자신을 낳아 준 분의 시신 앞에서 거절해야만 했다는 것에 대해 판단하실 겁니다."(p126) 끝끝내 거짓 없었던 뫼르소의 침묵과 사회의 관례를 따르지는 않았으나 어디까지나 진실이었던 무감정, 죽음에 다다라 다시금 냉정을 되찾은 뫼르소의 절제를 마주하고 나면 "참작"의 주체가 판사나 검사, 배심원, 독자가 아니라 실은 뫼르소였음을 알게 된다. "당신은 마음의 눈이 멀어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오."(p163) 라고 신부는 얘기하지만 실로 마음의 눈이 먼 것은 누구였더란 말인가. 뫼르소에 대한 편견을 한꺼풀 벗어던진 시야로 책을 덮는다. 이방인에 대한 찬양에 크게 공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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