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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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책을 읽으면 좋을까... "실상 내가 독자가 관심있게 봐주기를 바란 것은 누가 행복하게 되고 누가 불행하게 됐나보다는 어떠어떠한 것들이 허성 씨 가의 조용한 몰락에 작용했나 하는 것이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닌 보통으로 사는 사람의 생활과 양심의 몰락을 통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정직한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p27)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의 독자도 아닌 내가 발문 후기를 보며 괜히 뜨끔뜨끔한다. 내가 책을 딱 이렇게 보기 때문이다. 누가 행복하게 되고 누가 불행하게 되었느냐가 내 독서의 주요 관심사다. 마땅히 권선징악으로 흘러야 하고, 불쌍한 우리 누구는 더는 고생하지 말아야 하며, 끝은 반드시 해피엔딩. 이런 바람을 안고 책을 읽다가 내 뜻대로 막이 내리지 않으면 상심하여 쳐다보기도 싫어한다. 대판 욕을 하거나 실컷 재미있게 읽어놓고서는 내심 별로였다며 악담을 가득 담은 막장 리뷰를 쓴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니 넘 부끄럽고요ㅠㅠ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 그 사건 속 치열한 운명, 어쩌면 과오, 내지는 착오, 더불어 선택의 의미들을 왜 되짚어 보지 않았을까? 작가가 더 좋은 작품으로 독자를 만나기를 희망하듯 독자인 나도 점점 더 잘 읽는 독자로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까칠함과 유머에 반해서... 상 하나를 받아도 편하게 감사하다 하실 때가 없다. 왜 나를? 내가 이 나이에? 거절하려고 단어 찾고 있었는데 시간이 벌써?? 내가 상주는 사람이면 식은땀이 뻘뻘 났을 것만 같이 수상 소감이 꺼칠꺼칠하시다. 반면 책이 출간될 때는 고개 숙여 출판사에 감사하는데 이것도 읽다 보니 어라??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너무너무 예의를 차리시는 것이 출판사랑 약간 거리를 두시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다 빵 터진 서문 하나가 있었다. 2009년에 출간된 성장동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라는 책에 실린 서문이다. "느리기로는 출판사가 나보다 더해서 이 원고를 넘긴지가 2년은 되는 것 같은데 이제야 책이 나온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니 기다리느라 삐친 마음이 절로 풀렸고, 경과한 시간 때문에 내 글을 남의 글처럼 객관적인 잣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하는 시간만큼 수고도 많았을 어린이작가정신에게 감사드립니다."(p162-163) 참고로 이번 박완서의 모든 책을 출간한 출판사가 작고 착하다고 작가님이 칭찬하신 적이 있는 바로 그 작가정신이다. 옮겨 쓰고 보니 나만 웃음이 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참고로 나는 작가정신 서포터즈, 이것은 지각서평ㅠㅠㅠ

 

나랑 작가님이랑 비슷한 부분이 있네?.... 이를 테면 이런 거 "비좁은 서가에 30여 권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나는 아직 읽지도 않았지만 앞으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을 솎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p80) 새책 자리를 만드느라 헌책을 정리할 때 나는 내가 읽고 꽂아둔 책부터 보지 않고 안읽은 책들을 먼저 본다. 아직까지 안읽었고 아마 1, 2년 안으로도 안읽을 것 같은 책들을 먼저 선별하는데 몇 년 안지나 후회하는 때도 있지만 대개는 내보낸 책이 뭐였는지 기억도 못한다. 의외로 잘 못보내는 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나 엄청 표지가 예쁜 그런 책이 아니라 너무 힘들게 읽어서 읽을 때 많은 자욱을 남긴 책들이다. 작가님의 책장에 솎아내고 또 솎아낸 후 남겨진 책들이 뭐가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또 하나 비슷한 거. "틈만 나면 은근히 주변 정리를 하는 게 일이다. 정리라고 해도 무얼 가지런히 하는 게 아니라 주로 없애는 일을 한다."(p136) 꽉 찬 서랍보다 빈 서랍이 흐뭇하고 시효가 지나면 메모도 후다닥 버려버린다는 작가님, 옛날 일기장도 과감하게 (실은 부끄러워서) 버린 적이 있는 터라 이 마음 잘 알지. 혼자 공통점을 발견하며 신나한다.

 

그간에 출간된 박완서 작가님의 책들 속 서문과 후기를 우표 크기만한 컬러 표지 사진과 함께 모아놓은 책이다. 이렇게 뜻깊은 책이 이렇게 아름답게 나와서 세상에 계시지 않는 작가님도 무척 흐뭇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 하나 후기 하나 모두 다 생각할만한 거리가 있고 가슴 아픈 후기도 없진 않지만 대개는 즐거웁고 따숩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을 적만 해도 작가님 책 중에 읽은 책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서문 하나를 보고 불쑥.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 책이 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방영될 적에 재판되어 다시 책머리를 써주신 게 있는데 이걸 읽은 적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금박으로 스티커가 붙어있었는데 티비를 보아서 아는건지 실제로 본 건지 확신이 안선다는 게 함정. 중학생 때 책방에서 빌렸던 기억도 있어서 한때는 이 책 읽었어요! 라고 말하곤 했는데 말하다 보니 또 아닌 것 같아서 안읽었어요! 정정을 했는데 아 깜깜한 기억력이여. 책을 펼쳐보면 분명하게 알 게 될 것 같아 올해에는 꼭 만나볼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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