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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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구빈원에서 태어나 알파벳 순으로 이름을 부여받았다. 지원금을 착복할 목적으로 고아농장을 꾸리는 한 노파의 손에서 9살이 될 때까지 굶주림을 겪고 매질을 당하며 컸다. 9살 때 다시 구빈원으로 불려갔지만 그곳의 사정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교구 이사회가 펼치는 정책은 뜻이 분명했다. 구빈원의 고아는 구빈원 안에서 천천히 굶어죽든지 길거리에서 재빨리 굶어죽든지 둘 중 하나니까 잘 먹일 필요가 없다는 것. 너무 배가 고파 죽 좀 더 달라고 말했다가 교수형에 처해질 놈이라는 욕을 듣고 독방에 갇혔던 올리버는 3파운드 10실링에 굴뚝 청소부에게 팔렸다가 다시 장의사의 도제로 되팔린다. 이건 꽤 운 좋은 일이랄 수 있었는데 굴뚝 청소부는 게으른 도제들이 굴뚝 안에서 게으름을 피지 못하게 하겠다며 그 밑에서 불까지 떼는 악마 같은 놈이었던 것이다. 장의사는 사기꾼이라도 사람 죽이는 나쁜 놈은 아니니 양반이랄 수 있었는데 대신에 그곳엔 자선학교 학생인 노아가 있었다. 가난하기는 올리버나 노아나 매한가지지만 노아는 출신이 분명하고 양친이 살아있다는 이유로 기세등등해서 올리버를 지질하게 학대한다. 노아의 괴롭힘에 묵묵히 인내하던 올리버는 어머니를 욕하는 말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장의사의 집을 탈출한다.

런던이 어떤 곳인지를 몰랐던 올리버. 발이 부르터 피가 나도록 걷고 또 걷다가 만난 어린 신사 미꾸라지의 꾐에 넘어가 소매치기 우두머리인 유대인 노인의 집에 발을 디딘다. 원래도 험난했던 올리버의 인생은 그를 만나 더욱 거대한 막장 너울에 파도차기 시작하는데 노인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올리버를 결코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올리버의 착한 성품에 반한 노신사와 숙녀분들이 올리버의 인생을 구제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때마다 올리버를 납치하거나 올리버를 강도짓에 써먹거나 올리버를 범죄자로 만들어 런던의 하류 인생으로 말아먹겠다는 듯 덤터기를 씌운다. 말로는 올리버에게 다른 소매치기 소년들과 다른 급의 재능이 있다 하는데 기술과 대담성을 겸비한 미꾸라지와 비교하면 마냥 순진한 올리버에게서 도대체 무얼 엿본 건지 알 수 없었다. 유대인 노인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악당 멍크스는 올리버의 과거를 좇아 구빈원까지 찾아가 올리버의 모친이 남긴 증거를 인멸한다. 올리버의 불행 외에는 바라는 게 없다는 멍크스, 그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토록 올리버를 미워하는 것일까. 이렇게 보면 올리버는 불행 밖에 없는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노신사와 숙녀들이 함께 할 때 봄날 초록의 새싹이 돋아나듯 마음을 치유받고 성장한다. 인생의 비밀이 새롭게 밝혀지는 그날까지 결코 불행에 좌초하지 않으며 아름다운 영혼을 지켜나간다.

희한하다. 어지간한 고전은 그림명작 동화책으로라도 만났는데 올리버 트위스트에 대해서만큼은 기억이 없다. 불쌍한 고아 소년의 대명사처럼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이름만을 알았을 뿐 영화도 본 적이 없고 책과도 첫만남이다. 603이라는 대단한 페이지에 일차로 놀라고 올리버의 존재감이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차로 놀라며 매일매일 조끔씩 완독했다. 올리버 보다 올리버의 주위에서 노니는 인물들이 주는 흥미로움이 훨씬 큰데 죽을 날을 받아놓고서도 올리버의 행복을 비는 충실한 친구 딕, 심약한 성품으로도 노약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학대하는 교구관 범블, 호주행에 처해진 미꾸라지나 개과천선한 찰리 베이츠 같은 좀도둑들, 올리버를 구하려다 살해 당하는 창녀 낸시, 유대인에 대한 각종 편견을 모조리 뭉뚱그려 놓은 것 같은 좀도둑 대장 페이긴, 낸시의 포주이자 애인인 사익스, 점잖은 채하며 하층민의 영혼을 녹여 부를 쌓는 신사들 등 1830년대 런던 앞뒷골목의 고약한 지린내를 풀풀 풍기는 악당들이야 말로 이 소설의 찐 매력이었다. 명작이 주는 뿌듯함에 더해 리얼 막장 모험 활극으로써 재미 또한 두드러지는 책.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으면서도 생각했지만 그 시절 찰스 디킨스가 셰익스피어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는 말이 가히 과장은 아닐 듯하다. 완연복이며 조지 크룩생크의 24장의 흑백 삽화를 담고 있다. 표지의 명화는 오거스터스 에드윈 멀레디의 <런던 브릿지에서의 쉼>. 하룻동안 32킬로미터를 걷고 건초더미 위에서 잠들었던 올리버의 평화로운 잠과 표지의 별이 총총한 밤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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