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벨리스크의 문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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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 휴고 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는 부서진 대지 시리즈 제 2편이 출간됐다. 1편 다섯 번째 계절을 잇는 오벨리스크의 문이다. 세계관에 경악하고 인물에 감탄하는 그야말로 내가 원하는 이상향의 판타지!! 어쩜 이렇게까지 재미있을 수가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출간 텀이 있어서 설정이 기억 안날까봐 걱정했는데 웬걸. 앞부분 읽자마자 다섯 번째 계절의 내용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강렬해 잊을 수가 없었던 거다.

천년이 갈지 만년이 갈지 알 수 없는 다섯 번째 계절(끊임없는 지진, 계속된 겨울, 불가능한 수확, 겨울잠에서 깨지 않는 동물, 예측 불가능의 재난) 앞에서 에쑨은 딸 나쑨을 찾아 고요 대륙을 헤맨다. 아들을 죽이고 딸을 납치한 남편, 그런 자의 다정함을 믿고 결혼을 한 자신이 비루하다. 고작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해 자식을 낳은 에쑨에게 딸 나쑨 또한 분노한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아양을 떠는 것으로 삶을 연장하며 나쑨의 어린 영혼이 조각난다. 지자는 지자대로 로가의 능력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내하지만 나쑨을 볼 때마다 폭발하는 증오를 억누를 수 없다. 내 자식이 더러운 로가라니, 죽어 마땅한 것을 내가 살려두고 있다니. 정신을 차려보면 저도 모르는 새 딸의 뺨을 내려치고 있다. 달리는 마차에서 딸을 떠민다. 딸의 목을 조이기 위해 두 손을 내밀고 칼로 나쑨을 찌르려 덤빈다. 로가를 자식으로 둔 모든 부모가 지자 같지는 않다. 지자의 증오심은 도대체 무엇에 기인한걸까?

또한 나쑨은 그런 지자의 손아귀에서도 에쑨을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이건 이상하다. 나쑨을 향한 에쑨의 절절한 모성을 생각하면 나쑨의 차가움은 야속할 지경이다. 펄크럼의 수호자에게 잔인한 교육을 받았던 오로진은 상냥한 교육법을 몰랐다. 자칫 힘이 잘못 발휘되면 일대의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나쑨의 재능을 제어하기 위해 에쑨은 냉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쑨의 손목을 부러뜨린 것도 같은 이유다. 네가 살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내게 감사할테다. 에쑨은 생각하지만 나쑨은 아니다. '찾은 달'에 이르러서야 진짜 집을 찾게 된 나쑨.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을 만나고 제대로 된 보호를 받으며 손목이 부서지지 않은 채로 교육 받는다. 샤파를 비롯한 세 명의 수호자가 머무는 이 땅에서 나쑨은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 한때는 자신의 스승이었지만 이제는 원수와 다름없는 샤파와 딸의 이 우연한 만남을 에쑨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길을 잃은 에쑨은 에쑨대로 카스트리마의 정동에서 새삶을 시작한다. 나쑨을 찾아야 하지만 어디에서도 추적 가능한 단서가 나오지 않는 지금으로썬 다른 수가 없다. 그곳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수호자 또한 연인인 알라배스터에게 새로운 교육을 받으며 지글지글 끓고 끊어지고 바스라지고 솟구쳐 오르고 폭발하며 쾅쾅 성내는 대지의 원인도 알게 된다. 달이 없다. 달이 날아갔다. 도대체 왜? 누가? 어떤 이유로 달을 궤도 밖으로 날려버렸나? 엄마와 딸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다른 목적으로 성장하지만 결국 이들은 달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예견된다. 1권의 중심이었던 펄크럼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오벨리스크와 스톤이터, 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달의 궤도를 수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에쑨과 나쑨의 성장이 든든한 뿌리를 내렸다. 3편 완결에서는 죽순처럼 쑥쑥 솟아나는 이들의 결말을 보게 될테지. 부디 모녀의 해후가 얼른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종말의 시대를 종단하는 여정에 호기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반드시! 만나기를 바란다. 판타지를 좋아하는데 아직까지 이 책을 못읽은 독자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다 아플 정도니까 꼭꼭꼭 읽어보시길. 강추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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