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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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아홉 둔 소 길마 벗을 날 없고 가지 많은 나무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빅 엔젤이 우리나라의 이 속담들을 들었으면 무릎을 쳤을 거에요. 빅 엔젤의 생이야 말로 철들 적부터 가족을 위해 뼈가 삭도록 노동하는 삶이었거든요. 내 가지를 이고 지다 못해 남의 나무 가지들까지 떠받친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이었구요. 그의 인생은 소년기부터 파란만장 했는데 아버지 돈 안토니오와 어머니 마마 아메리카부터가 평범치 않은 사람들이었어요.

바람난 남편이 집을 나가겠다 할 적에 마마 아메리카는 화를 내지 않아요. 대신에 저 놈이 나가는 즉시로 아껴 마지 않는 오토바이를 바다에 처박겠다고 속이 후련해지는 상상을 해요. 마마 아메리카의 유일한 걱정은 그의 큰아들 빅 엔젤이었는데 예민한 아들이 아버지의 배신으로 무너지지는 않을까 염려했어요. 그래서 이혼에 앞서 빅 엔젤을 집에서 내보내기로 하고 어선을 꾸리는 이모부 첸테벤트에게 딸려보내요. 근데 이 새끼 너무 나쁜 새끼. 어린 조카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학대하는지 몰라요. 빅 엔젤은 쓰레기 더미에서 잠을 자고 미끼로 쓰이는 청어를 날로 먹고 밤에는 무명천 바지를 풀어헤친 채 구타하는 이모부를 버텨요. 사나이니까 혼자 있을 때만 울고요. 가족들과 여자친구 페를라를 그리워해요. 몇 푼 안되는 급료를 악착 같이 모으며 마음 속으로 얼마나 다짐했는지 몰라요. "나는 가치 있는 놈이야. 난 가치 있는 놈이야." 이모부에게 달아나던 그밤의 이야기는 오로지 빅 엔젤 홀로 간직한 비밀인데요. 제발 제발 그 오물 같은 놈에게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말기를. 빅 엔젤의 이야기를 읽으며 얼마나 바랬는지 모릅니다.

빅 엔젤이 가족을 찾았을 때엔 온식구가 길거리에 나앉은 상태였어요. 가장 없이 마마 아메리카 홀로 아이들을 키우기가 너무 힘들었던 거에요. 빅 엔젤의 첫사랑인 페를라도 다른 남자를 만나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상태였구요. 빅 엔젤의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예상이 가시나요? 그렇지만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할 줄 알았던 빅 엔젤은 국경선을 넘어 미국에 밀입국해 자리를 잡아 나가기 시작해요.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일하고 돈을 벌며 식구들을 건사해요. 페를라의 남편이 죽은 것을 알고는 페를라와 결혼해 자식들뿐 아니라 페를라의 동생들까지 거두고요. 의붓 동생인 리틀 엔젤의 주말까지 책임져요. 미국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리틀 엔젤을 빅 엔젤은 미워하는 동시에 동정해요. 멕시코의 가족들을 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미국의 가족들도 배신하거든요. 리틀 엔젤도 형을 미워하는 동시에 아버지보다 더욱 따르며 존경해요. 전형적인 애증의 관계죠.

빅 엔젤은 페를라와의 사이에서 세 아이를 낳았고요. 그 아이들이 커서 또 손자 손녀를 낳았어요. 물론 모든 형제 모든 자식들이 장성하지는 못했어요. 모든 노력이 운명을 이기는 건 아니니까요. 빅 엔젤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암이거든요. 그가 곧 죽을 걸 알았을 때 마지막 생일 파티를 기획해요. 문제는 빅 엔젤의 생일 일주일 전에 100세인 마마 아메리카가 돌아가셨다는 거에요. 70세가 될 아들을 위해 마마 아메리카가 조금만 양보해주셔도 좋았으련만. 큰아들과 며느리에게 섭섭했던 그간의 분풀이를 이렇게 하시나 싶었습니다. 빅 엔젤은 그러나 생일을 포기하지 않아요. 생일 전날 어머니를 장례 치르고 다음 날 곧장 내 생일 파티를 하는 거야! 죽을 날이 코 앞인데 난 아무것도 무서울 거 없어!! 그는 도대체 왜 이렇게 생일 파티에 집착하는 걸까요? 70세의 생일은 그에게 무슨 의미일까요? 미국과 멕시코 전역에서 모여든 각양각색의 친척들이 들려줄 삶의 이야기 속에서 빅 엔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빅 엔젤은 무사히 인생의 마지막 생일을 치룰 수 있었을까요?

없으면 외로운데 함께 있으면 또 너무 시끄러운 빅 엔젤의 가족들. 모이기만 하면 다투는 이 웬수 같은 집구석 내가 다시는 오나 봐라 하는데 돌아보면 이놈의 웬수들이 짠해서 몸둘 바를 모르게 되는 그런 거, 너무 잘 알겠어서 눈물이 퐁퐁 나는 감동적인 가족 축제의 현장에 다녀왔어요. 멕시코 가족들의 이름이 너무너무 낯설어서 초반에는 애를 좀 먹었는데요. 읽다 보면 그놈 같은 저놈이 분간이 되며 책이 잘 읽히는 분기점이 옵니다. 너무 가난해 버틸 수 없었던 고향 멕시코에서의 삶, 먹고 살기 위해 미국에서 불법 체류로 연명하는 삶, 미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죽음에 서명하는 삶, 서명 후에도 인정받지 못해 그늘로 표류하는 삶, 멕시코인으로도 미국인으로도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는 삶, 빅 엔젤과 그의 가족들의 뜨거운 가족애도 물론 감동적이지만 끊임없이 존엄에 대한 사투를 벌여나가는 생의 여정으로 가슴이 벅찬 책이었어요. 페를라의 말대로 언제 골로 갈지 모르는 인생이라지만 삶의 마지막이 빅 엔젤처럼 농담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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