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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도망치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12월
평점 :
츠지무라 미즈키의 상냥하고 다정다감한 성장소설을 좋아해요. 처음 만난 츠지무라 미즈키의 책은 <아침이 온다>였는대요. 미성숙한 몸과 마음으로 임신을 한 중학생 히카리와 임신을 원하지만 거듭된 실패로 좌절 중인 사토코의 이야기였어요. 두 사람이 낳고 키운 아사토가 다정한 마음을 한데 엮어 가져다준 밝은 아침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왕따로 등교 거부 중인 중학생 고코로가 거울 나라의 앨리스처럼 환상의 세계에 풍덩 빠져들던 <거울 속 외딴성>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웠게요. 일본 서점 대상 수상작은 역시 믿을 수 있구나 새삼 실감한 책이었어요. 19년에 출간된 얼음고래부터 만나야지 작정했는데 어쩌다보니 블루홀식스에서 출간된 <파란 하늘과 도망치다>를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앞서의 두 권과 마찬가지로 따뜻하고 포근한 모자의 성장기에 역시 츠지무라 미즈키!! 제 최애 작가님은 아니시지만 뿌듯뭉클한 심정이 되어 책 자랑을 해봅니다.
새벽녘 걸려온 응급실에서의 전화. 연극 훈련을 마친 후 귀가하던 남편 겐이 교통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혼비백산해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이후 사나에는 남편에게 발길을 끊습니다. 유명 여배우의 차량에 동승한 남편, 두 사람의 불륜을 떠들어대는 언론, 얼굴에 입은 치명적인 상처에 좌절한 여배우의 자살. 배신감에 치떨려 할 새도 없이 연이은 가십에 벌떼처럼 달려드는 취재진과 조폭 기획사의 괴롭힘에 숨조차 쉬기 힘든 상황으로 떠밀려요.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할 남편은 퇴원 후 소식 한 통 없이 잠적 중이고요. 아들 방의 장농에서는 피 묻은 식칼이 떨어져 사나에를 패닉에 빠트립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의 짐을 추슬러 허겁지겁 사만토로 달아난 사나에. 식당에서 알바를 하며 아들 자카라의 여름방학을 평화롭게 지켜가려 하지만 그곳까지 쫓아온 기획사 일당 때문에 결국 이에시마, 벳푸, 센다이로 계속된 도피생활을 지속합니다.
이런 무책임한 인간이 다 있나!!! 사나에의 남편 겐 때문에 읽는 내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몰라요. 처자식은 나몰라라 저만 살겠다고 달아나서 소식 한 통 없는 아버지지만 자카라는 겐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엄마 이혼하지마, 펑펑 울며 매달리는 아들을 다독이며 사나에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을까요. 개학날이 다가와 도쿄로 돌아가야만 하던 아침 자카라는 또 한번 엄마에게 부탁합니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도쿄에 가고 싶지 않아, 사실 나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있어. 아들의 손을 꼭 쥐고서 사나에는 얘기합니다. "조금만 더 둘이서 도망쳐 보자."(p140) 새우들이 뛰노는 맑은 강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품어주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너른 바다에서는 주저 않고 다가와 먼저 말 걸어주는 친구를 사귀었고요. 온천 위에 떠있는 마을에서는 번듯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으며 혼자라는 외로움도 씻었습니다. 대지진을 겪고도 다시 시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꿋꿋한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주고 받는 기쁨도 깨달았지요. 학교와 집, 아버지와 남편의 울타리 안에서 살 때에는 알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도피 중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아들이 두 손 꼭 잡고 걸어가는 길 위의 풍경들이 아름다워 설렜습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한결같이 보석 같고요. 어려움 속에서도 한뼘씩 성장하는 모자의 모습과 모자를 뒤따르는 푸른 하늘에 반해 독자의 마음도 쪽빛으로 물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역자 후기로 전해진 작가의 마음도 감동이었어요. 20대 때 이 소설을 썼다면 사람들의 선의에 이유를 붙였겠지만 30대인 지금은 사람들의 선의에 이유를 붙일 필요를 못느낀대요. 조건 없는 선의를 믿으니까요. 그 마음 고스란히 받아 독자도 정다웁게 독서를 마무리 합니다. 아참, 겐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그건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확실한 건 제가 사나에였으면 이유 무관 그 자식 등짝을 발로 확 차줬을 거라는 겁니다. 어휴, 용서가 안된다, 증말! (겐 앞에서만은 정다움 잠깐 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