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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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의 흥행 덕분에 겨울왕국의 모티브가 된 눈의 여왕과 안데르센 동화까지 관심을 받게 된 것 같다. 덕분에 나도 어릴 적 읽었던 그림동화의 원작들을 다시 읽게 되고 말이다. 완두콩 공주, 엄지 아가씨, 인어공주, 야생백조, 벌거벗은 임금님, 장미 요정, 돼지치기 왕자, 못생긴 새끼 오리, 눈의 여왕, 빨간 신, 성냥팔이 소녀, 바보 한스. 아는 동화만해도 열 손가락을 넘어가는데 모르는 동화까지 합치니 작품 수가 자그마치 168개나 된다. 해제를 빼고서도 페이지가 1254를 찍을만큼 어마어마한 숫자다. "가장 환상적인 동화는 현실에서 솟아나온다"고 말한 안데르센의 고집은 그의 동화 전반에 미쳐있었는데 "못생긴 새끼 오리"는 미운 외모에 못배우고 가난했던 안데르센의 자전적인 성장기였고, "빨간 신"은 견신례 때 신을 새신발에만 관심이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기반으로 한 동화였다. "성냥팔이 소녀"는 구걸로 연명했던 어머니의 이야기였으며, "인어공주"는 루이즈 콜린에 대한 안데르센의 짝사랑이 줄거리가 되었다. 이 밖에도 "돼지치기", "눈사람", "꿋꿋한 장난감 병정" 등 많은 동화들에서 안데르센과 안데르센이 사랑했던 여인들, 친구와 이웃의 추억이 담겼다. 근대 아동문학의 아버지, 어린이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 최초의 작가, 1800년대에 쓰여진 옛 이야기임에도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난 동화가 어른들을 반긴다.

"게르다가 널 찾아 온 세상을 뒤졌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인지 한번 봐야겠어."(p298) 눈의 여왕에게 납치된 친구 카이를 찾아 집을 나선 게르다. 요술쟁이 노파의 꽃밭에서, 말을 제일 잘하는 신랑을 얻은 공주님과 왕자님의 왕궁에서, 도둑의 딸 게르다의 집과 라플란드 노파와 핀란드 여자가 머무는 북극광의 하늘 아래서 신발도 없이 배를 쫄쫄 굶으며 눈보라속을 헤맨다. 어릴 적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심한 게르다의 고난에 마음이 애처로왔다. 악마의 거울 파편을 맞은 카이는 납치되기 전부터 아주아주 못된 아이가 되어 게르다에게 미운 소리만 했는데 게르다는 어쩜 이런 희생을 자처했는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 돌아온 집, 만발한 장미와 성큼 다가온 무더위는 기억 속의 그림책엔 없는 내용이다. 게르다의 용기와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부디 행복하길!

"아름답고 착한 것은 얼마나 빨리 사라져 버리는가! 정말 슬픈 일이야."(p217) 여동생의 약혼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오빠는 날카로운 칼을 뽑아 청년을 찔러 죽인다. 보리수 나무 밑에 묻힌 청년은 영영 잊힐 뻔 했으나 다행히 이를 목격한 자가 있었다. 여름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장미꽃에 살던 요정님이었다. 요정은 처녀의 꿈에 나타나 약혼자의 행방을 알리고 처녀는 약혼자의 머리를 자신의 방 화분에 옮겨 심은 뒤 그 위에 재스민 가지를 꽂는다. 상심으로 흘리는 처녀의 눈물을 받아마시며 재스민 가지는 점점 더 싱그럽게 피어난다. 처녀마저 죽은 뒤 사악한 오빠는 여동생의 유산이라 할만한 재스민 화분을 제 침대 옆으로 옮기는데 그 밤 활짝 핀 재스민 꽃에서 무장한 요정들이 달려나와 오빠의 혀에 독침을 찔렀다. 다음날 시체를 발견한 이웃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말한다. "재스민 향기 때문에 죽었군." 나쁜 사람을 벌하는 장미요정을 찬양하라.

뽀글뽀글 거품이 되어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인어공주는 공기의 요정이 되어 불멸의 영혼을 얻는다. 완두콩 공주를 아내로 맞은 왕자는 공주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완두콩을 왕궁 방물관에 전시한다. 엄지공주에겐 마야라는 예쁜 이름이 있었다. 왕자는 물론이고 공주도 상대 얼굴부터 본다. 알라딘이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트렁크를 타고 하늘을 날았을지도 모른다. 엄마 오리가 처음부터 새끼오리를 미워했던 건 아니다. 못생겼지만 튼튼하고 헤엄을 잘 치니 제 힘으로 운명에 잘 맞설거라는 믿음이 있던 때도 있었다. 그런 엄마 오리가 왜 변했느냐? 다 남의 말 때문이다. 이러쿵저러쿵 아이를 두고 갖은 입방정을 떠는 이웃들에 대한 스트레스로 엄마 오리는 출산 우울증이 왔던 것 같다. 돼지치기 왕자는 공주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는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와 공주를 비웃는다. "한낱 장난감을 가지려고 돼지치기에게 입을 맞추다니, 그럼, 잘 있으시오." 인사하며 왕국으로 돌아가 성문까지 걸어잠가 버린다. 쫓겨난 공주는 모든 것이 끝났다며 구슬피 울고 이야기는 그냥 그걸로 끝. 안데르센 동화에서는 의외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결말이 흔치 않다. 마냥 예쁘거나 마냥 귀여운 인물도 잘 없다. 꿈과 희망, 사랑으로만 꽉 찬 세상도 물론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인물, 어느 동물, 어느 인형이든 자신이 지고가야 할 몫의 짐이 있다. 동화는 그 짐들을 어떻게 이고지고 살아갈지에 대한 이러저러한 답들이다. 또 어쩌면 조금이라도 짐을 가볍게 느끼기를 바라는 안데르센의 위로다. 어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그의 동화가 가진 위로의 힘이 우리 기억 속의 그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가급적 정제된 그림동화로 안데르센을 만나기를. 비극적이고 냉혹하고 부조리한 현실은 조금 더 커서, 가급적이면 천천히 마주쳤으면 좋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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