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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루션 맨 - 시대를 초월한 원시인들의 진화 투쟁기
로이 루이스 지음, 호조 그림, 이승준 옮김 / 코쿤아우트 / 2019년 12월
평점 :
북풍이 매섭게 불어오는 밤, 어니스트의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장작불을 쐬고 있다. 불은 아버지 에드워드가 자연에서 찾아낸 것들 중 가장 훌륭한 물건이랄 수 있는데 반야 삼촌은 이 불을 아주, 엄청나게, 어마무시하게 비난한다. 아버지가 가족들을 데리고 나무가 아닌 땅에서 살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삼촌의 비난은 거셌지만 불을 이용할 때만큼은 아니었다. "동생아, 네가 결국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구나! 집구석에 화산을 들여놓다니! 이건 주제넘는 짓이야! 자연에 어긋나는 일이라구!"(p11) 친환경적이고 자연 순응적인 삼촌은 여전히 나무 위에서 먹고 잔다. 그러니까 원숭이적인 거다. 엄청난 거구에 떡 벌어진 어깨, 무시무시하게 긴 팔다리, 날카로운 송곳니만 봐도 여전히 아주 많이 동물적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런 삼촌 눈에 동생 에드워드는 얼마나 미친 놈처럼 보였을까? 에드워드는 육식동물이 지천으로 깔린 나무 밑으로 내려갔다. 아이들이 두 살만 되도 땅에서 기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매섭게 때리며 반듯하게 걸으라고 훈육했다. 걷고 뛰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남는 길이야! 우리는 계속해 진화해야만 해!! 그놈의 진화, 진화. 어니스트는 귀에 딱지가 않을만큼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컸지만 아버지의 말처럼 삶이 그렇게 가파르게 바뀔 수 있을런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결국 해낸다. 풀뿌리로 연명하고 유충이나 씹어 먹던 삶, 덩치 크고 힘 좋은 육식동물들을 따라다니며 남은 고기로 연명하는 삶, 잡아먹겠다고 쫒아오면 고스란히 먹혀주던 삶이 불씨 하나로 달라졌다. 불은 곰을 내쫓고 사자를 위협하고 매머드를 허둥지둥 달아나게 만든다. 에드워드는 무리지어 사냥하는 법도 깨달았다. 돌을 쳐 뾰족하게 날이 선 무기도 만들어낸다. 에드워드는 과학자고 조금이라도 빨리 진화해 후손들이 풍요롭게 살게 하기 위해 자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에드워드의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성장한다. 오스왈드는 발 빠르고 끈기 있는 사냥꾼이 되었고 알렉산더는 예술적 감각을 깨달으며 동굴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윌버는 용암지대에서 부싯돌로 쓸만한 바위를 발견한다. 윌리엄은 좀 엉뚱한 녀석인데 처음엔 개 그다음엔 돼지 최종적으로는 사슴을 사육해보겠다며 호기롭게 시도 중이다. 이 이야기의 화자인 어니스트는 형제들 중 처음으로 꿈이라는 걸 꾸게 된 철학자 같은 녀석이다. 녀석은 자기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고 자아성찰에 푹 빠졌다. 그의 얼굴은 매일매일 변화 중이다. 턱은 작아지고 눈 뒤쪽 부분이 커지고 있다. 아마 모든 형제들의 아이를 제치고 어니스트의 자식이 가장 큰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겠지. 불쌍한 그리젤라, 그녀의 출산에 위로를 보낸다.
구제불능 진화론자 에드워드를 쫓아 직립보행을 하고 도구를 이용하고 불을 찾고 고기를 익히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족외혼을 하고 영역을 넓히며 야만인을 만나는 어니스트 가족!! 인류 진화의 연대기를 이만큼 재미있고 수월하게 풀어가는 모험 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제목을 바꿔가며 6번이나 개정 출판된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캐릭터 작가 호조의 일러스트가 몇 장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유쾌산뜻발랄코믹한 동시에 실은 많은 잔인한 역사를 품고 예견하고 있는 원시인들의 투쟁기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