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2008년 12월 21일, 크리스마스 휴가만을 바라며 호텔 프런트에서 고군분투 하던 로리. 퇴근 종이 울리자마자 해방을 외치며 귀가하던 버스 안에서 꿈에도 바란 적 없던 눈부시게 빛이 나는 남자를 만난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로리는 버스 안, 그 남자는 버스 밖 정류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는건데 로리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의식 과잉이 아니라면) 그 또한 자신과 다를 바 없이 운명의 벼락을 맞고 정신줄을 놓았다고 생각했다. 영화였다면 로리는 냉큼 버스에서 내려 그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또한 영화였다면 그가 냉큼 버스에 올라타 그녀 옆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이도저도 어려웠다면 창문을 열고 휴대폰 번호를 외치기라도 했을텐데 첫눈에 반한 게 처음이었던 로리는 너무 경황이 없었다. 남자가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었고 크리스마스 전야의 도로 정체 속에서도 버스는 지나치게 서둘러 문을 닫았으며 그 또한 버스를 쫓아오지 않았기에 여자와 남자는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채로 이별을 하고 말았다. 거의 1년 동안 로리는 남자를 찾아 헤맨다. 그가 앉았던 정류장에 전단지를 붙이는 정도의 정성까진 기울이지 않았어도 거리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술집에서 백화점 또 어쩌면 그녀가 일하는 호텔 프런트에서 그의 얼굴을 찾았다. 끊임없이 그의 얼굴을 복기했고 그와의 재회를 꿈꿨고 다정한 인사를 상상했다. 설마하니 룸메이트이자 인생 친구이며 자매와 같은 세라의 남자친구로 그 남자를 소개받을 줄은 상상도 못한 채로 말이다!

2008년 12월 21일, 아버지의 사망 후 지나치게 자신에게 의존하는 어머니와 동생을 생각하면 잭은 살짝 넌더리가 나는 느낌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던 그가 문득 눈을 들었을 때 자신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그녀를 보게 된다. 머리에 반짝이 머리띠를 하고 있는 울새 같은 여자. 보통의 로맨스 소설처럼 운명이 척추를 훑고 가는 느낌이었는지 는 알 수 없지만 잭은 그녀를 인상 깊게 기억한다. 조금 더 빨리 일어나 책을 챙기고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올라탔어야 한다고 후회도 한다. 1년이 다 되도록 문득문득 아니 실은 자주 버스의 그녀가 꿈 속에 등장하고 있으므로. 꿈에 나타나는 여자가 물론 그녀가 처음이었던 건 아니지만 이런 감각 이런 인상으로 남았던 적은 없었다. 빨간 머리가 아름다운 새 여자친구 세라를 만나고 난 이후로도 그건 마찬가지였는데 맙소사! 세라가 허구헌 날 자랑하며 사이 좋게 지내달라 요청하던 룸메이트가 버스의 그녀라니.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잭은 로리를 눈에 담는다. 로리의 곁에 선 남자를 질투한다. 로리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로리의 등을 받쳐주고 그러다가는 급기야 로리에게 키스하고 만다. "이 일에 대해서 서로에게 친절하자. 우리 둘 다 알아.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이 일에 의미를 둘 필요도 없어. 이 일로 달라질 상황도 없고."/ "우리 둘 다 남은 평생 그 일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언급하지 않는 거야. 세라한테도, 서로한테도, 심지어 금붕어한테도."(p151)

소시적 할리퀸 로맨스 꽤 읽은 사람인데 급변하는 로맨스에 발 맞춰 나가는 게 쉽지가 않다. 아니 이런 반전이, 이게 요즘 로맨스 소설 시류인가 깜짝깜짝 놀란다. 얼마전엔 애인 있는 남자가 아예 남남인 여자랑 한 집을 공유하며 사랑에 빠지는, 영국의 셰어하우스 커플이 나를 놀래키더니 이번엔 첫눈에 반한 남자 주인공을 두고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 영국 여자 로리가 나를 놀래켰다. 페이지가 한참이나 남았는데! 친구 세라와 잭이 헤어지기까지 했는데! 로리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 웬열!! 보통의 로맨스 법칙에서 벗어난 예상 밖의 전개에 갖은 호들갑을 다 떨었다는 거 아니겠는가. 초반에만 해도 남녀 둘이 큰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만으로 모든 죄가 사하여진 듯이 친구 몰래 사랑하다 뒤통수 치는 얘기겠거니 했는데 잭과 로리의 경우 잠깐의 실수가 있긴 했지만 최선을 다해 마음을 정리한다. 로리는 우정과 사랑 중 우정을 택했고 잭은 의리와 사랑 중 의리를 택한다. 물론 누구에게도 옳았다고 할 만한 선택이 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중반도 되기 전에 로리가 남편이 될 남자 오스카를 만나 사랑에 빠졌으므로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돌고 돌아 끝을 맺을지 영 감을 못잡았다. 뭐가 어떻게 끝나야 해피엔딩이냐는 확신도 서지가 않더라. 로맨스 소설에 삼각관계가 등장하면 언제나 '최선'이란 것에, 가급적 아무도 상처받지 않을 결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나름 크리스마스 로맨스로 이만하면 최선을 다한 해피엔딩이었던 것 같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딱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세라와 로리든 로리와 오스카든 로리와 잭이든 이보다 더 영화 같은 관계들을 찾기도 힘들테니까. 로맨틱 코메디의 여왕 리즈 위더스푼이 강력 추천한 소설! 재미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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