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머린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이상하다. 칠드런을 읽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칠드런의 속편 서브머린을 읽기 위해 펼치고 보니 인물도 내용도 너무 익숙하다. 넘기지 않아도 다음 내용을 알 것만 같고 그렇게 넘겼더니 역시나 내가 아는 그 내용이 맞는 지금 이 상황! 설마 나 칠드런을 읽었던 거야? 그런 거야? 러시 라이프 이외에는 20대 때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책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반갑기도 하고 어안이 벙벙하기도 한 상태로 그럼에도 확신을 못가져서 결국 칠드런을 끝까지 다 읽고서야 서브머린을 펼쳤다. 어떻게 이 엉뚱한 청년 진나이를 잊었던건지 이해를 못하면서도 반갑고 정다운 마음에 가슴이 부푼다. 반갑다 친구야!!!!

영업 종료 직전에 은행을 방문해서는 왜 업무를 안봐주냐며 직원에게 진상을 부렸던 진나이. 결국 진나이의 이런 어깃장에 발목이 잡혀 친구 가모이까지 무장강도에게 붙들리게 된다. 간이 부은건지 간이 없는건지 영 감이 안잡히는 진나이 곁에서 처음에는 창피해서 나중에는 무서워서 가모이는 어쩔 줄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강도의 정면에 서서 가짜 총으로 뻥치지 말라며 덤비지를 않나 뜬금없이 자기 기타를 달라고 소리 지르지를 않나 난데없이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기까지 하니 이러다가 총맞을까봐 겁난 것이다. 좋게 보면 엉뚱발랄하고 나쁘게 보면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의 중심은 나다! 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후안무치인데 어쩐 일인지 운도 따르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붙는진나이다. 친하지 않다며 온몸으로 진나이를 거부하면서도 내내 진나이에게 끌려다니는 가모이 뿐만 아니라 함께 은행인질로 활약했던(?) 시각장애인 나가세와 그의 여자친구 유코, 그리고 소년 조사관이 된 진나이의 후배 무토가 그렇다. 진나이 덕분이랄지 평소라면 생각지도 못한 사건 사고에 끌려가는 이들의 앞에 펼쳐쳤던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고 특별한 소동이 서브머린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칠드런 이후 12년 만에 뭉친 진나이와 나가세, 유코, 무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진나이의 밑에서 갓 신입으로 업무를 시작했던 무토는 이제 두 아이의 아빠다. 진나이는 여전히 독신,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독신이려나? 다섯개의 단편 연작 소설로 엮어졌던 칠드런과는 달리 서브머린은 진나이와 무토가 소년조사관으로서 맡게 된 촉법 소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칠드런 속의 단편이었던 칠드런, 칠드런 2가 깊이 있는 질문과 의견을 입고 한층 성장해 돌아온 느낌이랄까. 무면허 운전으로 사람을 죽인 다나오카 유마, 인터넷에서 사람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댓글러들을 똑같이 협박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시험감찰 중인 오야마다 슌, 10년 전 졸음운전으로 등교길 초등학생을 치여죽였던 청년 와카바야시 등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나 고바야시 유카의 <저지먼트>와는 또다른 기운을 풍기는 소년범들이 등장한다. 어떤 소년은 입을 꾹 닫고 변명하길 거부하고 어떤 소년은 어른의 눈으로는 영 이해가 안가는 방식으로 사회를 도우며 또 어떤 소년은 반성하고 회개하며 매일 같이 과거를 사죄하는 삶을 산다. 그런 소년들을 천편일률적으로 싸잡아 거부하고 매도해도 좋은가 하고 무토가 묻고 진나이가 함께 답을 찾아가며 성장하는 소설이었다.

나를 포함해 소설 속의 많은 사람들이 촉법소년에게 분노한다. 저지른 죄에 비해 경미한 처벌을 받고 사회로 돌아오는 이들. 피해자들은 어쩌면 평생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갈지도 모르는데 어린다는 이유로, 뭘 몰랐다는 이유로, 사실은 뭘 모르지도 않는다는 걸 그들도 알고 우리가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죄가 사해지는 것만 같은 현실 앞에서 화가 난다. 벌조차 가벼운데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마저 관대할 이유가 있는가, 이렇게 쉽고 용서하고 포용해도 되는건가 의문도 느낀다. 그 의문을 이해하면서도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자고 독자를 찬찬히 설득하는 책 같았다. 가정법원의 소년 조사관으로 살아가며 사회 속으로 소년소녀들을 돌려보낼 의무와 책임을 떠안은 진나이와 무토의 이야기는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답게 낭만적이고 감동적이며 동화 같고 사랑스럽고 다정다감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지만 무거운 주제를 이만큼이나 술술 풀어간 이사카 코타로의 도전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진나이와 함께 한뼘 커진 그의 월드가 정말이지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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