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향> 1998년 선보였던 작가정신의 소설 향이 리뉴얼을 거쳐 새 중편 소설 시리즈로 거듭났습니다. 저는 요즘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와 창비의 소설 Q,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자음과모음의 새소설로 여러 한국작가들의 중편소설을 만나는 중인데요. 소설 향을 통해서 또 처음으로 김사과 작가님의 글도 읽게 되었습니다. 0 영 ZERO 零 독특하기도 하고 쓰기에는 좀 번거롭기도한 네 개의 0을 제목으로 한 책입니다. 숫자 영의 한문이 떨어질 영, 비오다 영인 줄을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됐는데 읽고 나면 심장이 똑 떨어져내리는 느낌이라 한문의 뜻과 주인공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자 "나"는 독사과 같은 존재입니다. 겉보기엔 멀쩡한 걸 넘어 반짝반짝 탐스럽고 윤이 나게 아름다운 여성인데 한 입만 깨물어도 상대를 죽이거든요. 소시오패스라고 할지 사이코패스라고 할지 저는 정확히 판단히 안서는데 하여튼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엔 유약하고 힘없는 엄마를 조정해 유산을 모두 빼돌리기도 했는데요. 상이 끝나자마자 부모님이 살던 아파트와 보험금을 정리해 한강 뷰가 끝내주는 33평 아파트를 구해 이사합니다. 혼자서요;;; 모친은 16평 전셋집을 구해 내다버리듯 해요. 매달 15일에 생활비는 보내줄테니 고마워하라 하면서요. 그 엄마가 미칠 지경이 된 것도 이해가 가시죠? 효녀인냥 입안의 혀처럼 굴면서 친모와 병원 사람들을 속였듯이 선배도 남친도 친구도 제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재미를 위해 야금야금 속이고 취하고 뺏고 이용하고 몰아갑니다. 자살한 친구, 자살은 아니지만 죽을 것이 예정된 선배, 정신병원에서 곧 자살할 것만 같은 모친, 아직 자살하진 않았지만 우울증의 늪에 한 발 들여놓은 제자, 4년만에 여자친구의 정체를 알고 벗어나려 몸부림치기 시작한 남자친구를 보며 "나"는 포식자의 미소를 짓습니다. 남자친구가 그녀를 고발하려 하지만 착한 척, 상냥한 척, 이성적인 척, 희생자인 척 하는 평소의 모습에 홀딱 넘어간 사람들은 결코 그 모습을 믿으려 하지 않죠. 나쁜 여자인 줄을 알면서도 또다시 자신의 아파트로 걸어들어온 "나"에게 문을 여는 전 남자친구 성연우, 과연 그는 식인종과 같은 독서과의 아가리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요?

읽고 나면 기분이 매우 거시기해지는 책입니다. 소름 돋고 거북하고 찝찝하고 혹시라도 이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어쩌나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좁은 울타리에 이런 미친 x는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감사하고. 한입한입 먹어치운 타인의 불행으로 거대하게 몸을 불린 여자가 재물을 찾아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이 책을 덮고도 한참이나 눈 앞에서 아른아른하는데 정말 입맛이 뚝 떨어지더군요. 나는 잘살거야, 너희 약한 것들을 잡아먹으면서 내 인생은 앞으로도 탄탄대로겠지. 호언장담하며 깔깔대는 여자의 웃음에 너무너무 괴로워지는 책 0 영 ZERO 零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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