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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의 윤무곡 ㅣ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7월
평점 :
시작부터 벌어지는 살인사건. 이쿠미라는 여성이 만취상태로 뻗은 남편의 목에 올가미를 건다. 속옷만 입은 채로 상인방에 남편을 끌어올린다. 사람이 죽으면 괄약근이 풀린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X를 이용하면 약한 힘으로도 남자 하나쯤 허공에 걸 수 있다는 것도 남편과의 대화에서 배웠다. 발버둥치는 남편의 몸부림, 남편의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끅끅대는 소리, 모든 것이 끔찍하고 꿈만 같다. 이쿠미는 "미안해 여보, 미안해 여보" 사과하면서 밧줄을 쥔 손에 체중을 싣는다. 필사적으로 남편의 목을 조인다. 남편이 미워서가 아니다. 착한 남자였다. 언제나 분에 넘치는 남자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일을 벌이는 건 어디까지나 돈 때문이다. 남편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진동이 사라지고 푸드득, 듣던 대로 시신이 분뇨를 뿜는다. 증거를 없애고 탁자에 앉아 아들 신이치로를 생각한다. 유치원생이던 옆집 아이 미도리를 토막내 죽였던 살인 죄인, 그 무시무시한 놈의 어머니인 자신 또한 살인을 저질렀다. 아들의 죄를 숱하게 비난해온 자신이 부딪힌 아이러니 앞에서 이쿠미는 비소조차 흘리지 못한 채로 탁자에 엎드린다. 짐승을 낳은 짐승 같은 여자, 아니 어쩌면... 독자는 이쿠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이쿠미를 변호하려 나서는 소노베 신이치로, 이제는 미코시바 레이지로 개명한 악덕의 윤무곡의 주인공을 만난다.
단순 흥미로 토막살인사건을 저질렀던 14세의 소년범 소노베 신이치로. 아들의 범죄가 밝혀진 후 소노베 집안은 완전히 풍비박산 난다. 아버지의 자살, 아머니와 누나의 도피, 애초에 정이 없는 가족이었기에 소노베 신이치로는 가족에게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무관심했던만큼 자신과 연을 끊고 사라진 후에도 원망하거나 찾을 생각 또한 하지 않았다. 미코시바 레이지로 다시 태어난 이 남자에게 있어 부모는 단 한 명, 소년원의 담당 교관이었던 이나미 다케오 뿐이다. 그런 미코시바의 앞에 그녀가 나타난다. 아즈사, 미코시바의 친누나, "변호 의뢰를 하려고 해. 엄마가 살인혐의로 체포되셨어. 그것도 남편 살해 혐의로."(p27) 돈만 된다면 누구의 의외라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미코시바 레이지, 의뢰인이 친모라고해도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혼한 남자를 죽였다는 혐의로 체포된 어머니를 변론하기 위해 과거를 찾아가는 미코시바는 여느 때처럼 냉정할 수 없다. 살인죄인을 가족으로 둔 여자들의 삶이 어지럽게 망막을 적신다. 높은 가능성으로 모자가 대를 이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앞에서도 머리가 어지럽다. 살인본성도 유전이 되는가?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미도리를 죽인 이유가 모친에게 물려받은 유전인자 때문이었나? 이 무책임한 논리 앞에서 미코시바는 보기 드물게 화를 내며 동요하기도 한다. 속죄를 결심하면서도 단 한번도 가족을 떠올리지 않았던 미코시바에게 있어 이쿠미와 아즈사는 이나미 다케오와는 또다른 형태로 강력한 의뢰인이다. 의뢰인을 무죄로 이끌기 위한 미코시바의 현란한 변호의 끝에 어떤 결말, 어떤 반성, 어떤 속죄의 길이 펼쳐져 있을까?
선율을 반복하는 윤무곡처럼 살인이라는 죄를 반복한 어머니와 아들의 만남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동시에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봐왔던 사건들 뒤로 숨죽인 채 숨어사는 가해자의 가족들을 목격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괴물을 낳은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괴물을 그대로 괴물로 키운 건 부모니까 범인 대신 부모가 책음을 지는 게 도리 아니겠소?"(p177) 미코시바는 이쿠미와 아즈사와 한 집에 살았던 주인 영감의 말을 비웃는다. 이 말 어디에 정의가 있느냐고, 호기심, 가학성, 악의 외엔 달리 아무 것도 없다며 가족들을 무시하고 손가락질 하고 돌팔매질한 이웃에게 코웃음친다. 독자인 내 입장에선 한편으로는 이웃의 말에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가해자의 가족들이 가여웠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앞서 감정이 앞서버리니 실제로 내 이웃에 미코시바의 가족들이 산다면 도저히 평범하게 대할 자신이 없다. 미코시바는 죽인 것은 나이니 가족은 아무 상관이 없다, 가족들이 나로 인해 느끼는 죄책감 또한 내 탓이 아니다 라는 태도를 시종일관 고수한다. 시리즈 내내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코시바의 편을 들어왔던 내가 처음으로 미코시바의 반대편에 선 순간이었다.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냉철하고 차가운 성격, 미코시바 안에는 어쩌면 아직 부서지지 않은 괴물의 커다란 파편이 남아있는걸까? 다음 5권인 복수의 협주곡은 미코시바 변호사 사무실의 유일한 직원 구사카베 요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2년 안에는 출간이 힘들다는 건데 으아, 어떻게 기다린담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