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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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H.O.T 팬과 젝키 팬이 복도에서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싸우고 그 소식에 우르르 몰려나가 싸움 구경을 하던 우리들. 뭣 때문에 싸웠는지 누가 이겼는지는 기억에 없어도 어떡해어떡해 친구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오두방정을 떤 기억은 뚜렷하다. 누군가는 춤을 추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또 누군가는 팬픽을 출력해왔더랬지. 깨알 같은 글씨는 지금이라면 돋보기를 들이대야 할만큼 작았지만 생생하게 건강했던 그때의 눈은 무리없이 소화를 했다. 친구들과 돌려읽었던 순정만화가 유치하게 느껴질만큼 소년들의 사랑을 절절하게 녹여냈던 그 시절의 필력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아이돌 사랑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때는 없었어도 흥 많은 친구들을 엿보며 느꼈던 그때의 쏠쏠한 즐거움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핑클이, H.O.T와 젝스키스가 재결합해 펼쳐보이는 무대에 눈물 쏟는건 내가 그들의 팬이어서가 아니라 (핑클에 대한 기억은 노래방 뿐인 나인데도 눈물 줄줄) 지나간 시절의 향수 때문이었음을, 돌이켜 보고 싶은 건 그들의 무대가 아니라 그때의 우리였음을 가수들이 알면 배신감 느끼려나?

조우리 작가의 라스트 러브는 해체를 앞두고 콘서트를 연 여자 아이돌 제로캐럿과 그들의 팬 파인캐럿이 작성한 일곱 편의 팬픽을 교차시킨 굉장히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이다. 책의 속지부터가 독특한데 무지개 케이크 같은 아래, 위, 옆면이 어찌나 예쁘던지. 책소개를 꼼꼼히 읽은 독자는 이 무지개색 속편들이 팬픽이겠군 미루어 짐작했을테지만 책소개는 어줍잖게 훑고 곧장 본편으로 들어갔던 나는 사실 초반엔 무슨 책이 이렇게 앞뒤 연결이 안되냐며 머리 굴리느라 애를 좀 먹었다.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는데서 퍼즐처럼 글을 짜맞추고 있었으니 이 한심한 독자야 쯧쯧. 팬픽을 팬픽으로 보지 않고 아이돌 제로캐럿의 과거로 해석한 나는 얘네는 같이 학교 다니고 같이 편의점 알바하고 육상선수하고 과외선생하고 제자하다가 어떻게 다 같이 아이돌이 됐냐며 암만 소설이라도 넘 작위적이다 했더랬다. 게다가 같은 팀 멤버끼리 서로서로 좋아하고 삼각관계 사각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니 이게 아무리 소설이라도 가능한 이야기냐고 의구심도 가졌다. 아차, 팬픽!! 하고 깨닫고 났을 때는 이미 머리 아픈 채로 페이지를 절반쯤 넘기고 난 후였으니 머리 나쁜 독자를 작가님이 코 앞에서 보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후로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쭉쭉. 연예인치고도 생명이 짧은 여자 아이돌들이 느끼는 인기에 대한 비애, 재능에 대한 박탈감, 미래에 대한 불안, 팬들에 대한 두려움을 염려하며 읽었고 내일이면 그들을 잃게 될 팬들을 걱정하면서 읽었다. 진지하게 의미를 탐구하기 보다 무대 위의 누군가를 사랑했던 우리들의 그때, 어쩌면 우리들의 지금, 사랑받는 여기를 기억하며 읽으면 좋을 소설집이다.

**리뷰 쓰다 생각난건데다 나는 여자 동성애 소설에 아무 거부감이 없는가 보다. 처음 읽는 건데 어쩜 의식을 1도 안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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