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지 못한 숲 오늘의 젊은 작가 1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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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벤치에서 책을 읽던 미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두방울 톡톡 떨어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서다. 미끄럼틀에 올라가 미끄럼대 속으로 발을 밀어넣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생각했다. 집에 가기 전에 미끄럼틀 한번 타볼 생각인가 보다, 귀엽네. 그러나 미수가 미끄럼틀 속을 빙글빙글, 어른의 신장으로는 결코 빙글빙글빙글 돌아나갈 수 없는 깊이 속을 계속해 미끄러져 내려가는 순간, 착각이라는 걸 알았다. 집이 아니다. 숲이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제목은 미수의 이 숲으로부터 나왔던 것이다.

원룸이 즐비한 미수의 동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숲이었다. 푸르고 싱그러운 관목이 우거지고 바람에 온갖 향기를 날려보내는 풀꽃들이 가득한, 겨울이라는 계절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숲 속을 미수 혼자 걷고 있다. 짙은 물냄새를 풍기는 호수도 있다. 미수의 손에서 번져 책을 적시고 발 밑에서 번져나가며 바닥에 자욱을 남기던 물기는 사실 하늘에서 떨어진 비가 아니었다. 이곳 호수로부터 미수의 몸으로 뻗어나간 물기였다. 호수 속에 두 다리를 담근 후 미수는 생각한다. 하나, 둘, 셋을 세고 나면 이 물 속에 잠기리라. 그리고 다시 하나, 둘, 셋......

"K시 기차역 가스폭발 사고, 동생이 사라졌다" 라는 책 소개의 문구를 보고 동생을 잃은 누나의 성장소설이겠거니 했다. 감성 미스터리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바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미수와 연결된 숲의 존재, 판타지성이 의외라 조금 놀랐다. 소년의 존재를 알고 난 후엔 더 그랬는데 장르가 급 스토커물로 전환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둘, 셋을 세며 미수가 앉았던 벤치 근처에서 눈을 뜬 소년. 소년은 미수와 한 건물에 살며 수시로 미수의 집을 드나든다. 소년이 미수의 집에서 하는 일은 별 거 없다. 미수의 속옷을 들여다보거나 미수의 침대에 누워 향기를 맡거나..... 이런 일은 일절 없고 그저 미수의 화장솜을 채워주거나 절반쯤 줄어든 샴푸통에 샴푸를 조금 더 부어주거나 서랍장의 휴지를 몇 개쯤 채워넣는게 다다. 섬세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무 것도 모른 채 무심코 지나갈 법한 이 소극적 방문을 물론 미수는 알고 있다. 아는 걸 넘어 즐기고 있다. 그날의 변화를 만끽하며 내일쯤엔 또 뭐가 바뀌어있을지 궁금해한다. 그녀가 모르는 게 있다면 그렇게 집을 드나드는게 헤어진 전남친 윤이 아닌 소년 이라는 사실 정도뿐이다. (물론 큰 차이기는 해;;;)

빚만 내고 달아난 엄마를 대신해 젖 먹이는 시늉까지 하며 동생을 키운 미수. 동생을 추모하며 생존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삶을 살아온 그녀는 호수 속 깊이 잠긴 작은 돌멩이 같다. 미약하고 시시하고 보잘 것 없고 누구 눈에도 띄지 않는 존재감. 그러나 누구나가 꿈꾸는 비밀의 숲이 그녀에게는 있다. 어째서인지 미수 주변을 서성거리는 소년. 신분을 조작하는 불법적인 일에 종사하며 세상의 버그처럼 숨어 사는 소년의 미수에 대한 집착은 어딘지 이질적이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못시키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소년에게는 걸맞지 않는 행동이랄까. 소년의 집착엔 변태적 관음이라 치부할 수 없는 갸냘픔이 있다. 톡 치면 먼지처럼 바스라질 것만 같은 연약함이 두 주인공의 공통점이다. 그런 소년이 미수의 숲을 알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또한 그 숲을 다녀갈 수도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또 얼마나 놀랐는가 말이다. 소년이 숲속의 미수에게 바람을 날려보낸다. 미수의 몸이 민들레 씨앗처럼 들려 하늘을 난다. 소년이 숲속의 미수를 본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을 수 있지?

책을 다 읽었지만 사실 내가 뭘 읽었는지를 잘 모르겠다. 미수의 절망, 소년의 고독, 윤의 분노, 한 줄기 한 줄기 감정들은 손에 잡힐 듯 보이는데 그게 배경과 결합되니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보통은 아무리 난해하고 어려운 이야기라도 리뷰를 쓰다 보면 이쪽저쪽으로 맞춰지기 마련인데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은 제목처럼 비밀스럽다. 한번 읽는 것으로는 제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지 않는다. 주인공들만큼 소극적이다. 그렇지만 싫지 않았다. 부끄럼 많은 이 책을 더 잘 알게 되는 날이 올거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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