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트리스 1 - 깨어남 에프 그래픽 컬렉션
마저리 류 지음, 사나 타케다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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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마이카는 마녀 사제들의 경매장에 서있다. 한쪽팔이 없는 상태로 또한 그녀는 알몸이다. 두 번 다시는 이런 꼴로 붙들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두 번 다시는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며 농락 당하지도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결국 이런 모습이다. 마이카는 아카닉, 인간과 유희한 고대종족의 혼혈종이다. 인간 사제들은 마이카와 같은 아카닉을 경멸한다. 아카닉은 온전한 인간의 모습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여우 같은 꼬리, 까마귀 같은 날개, 종족을 특성시키기 힘든 외눈. 고대종족들은 미약한 마법의 힘과 짐승의 특성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혐오의 시작이 아카닉의 외모에서 비롯됐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이제 와 많은 마녀들이 이를 착각하지만 배타의 시작은 외모가 아닌 마녀들의 유전 형질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한 인간 사제와 아카닉이 동침하여 아이를 가진다. 태어난 아이는 완벽하게 아카닉의 특성을 물려 받았다. 많은 마녀사제들이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 순결은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순수한 혈통, 마녀의 피를 짙게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녀의 피를 지워버리는 아카닉의 존재를 마녀들은 참아줄 수가 없었다. 사제의 아이는 교황의 손에 죽어 아카닉 무리에 던져진다. 확장된 혐오는 전쟁을 불러왔다. 14만 6천의 아카닉이 죽었고 지금도 계속해 죽어 가고 있다. 마이카는 그런 참혹한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다. 대신에 기억을 잃었고 알 수 없는 괴 생물체의 숙주가 되었다. 끝없이 배가 고프고 끝없이 먹이를 갈구하는 비틀린 욕망. 죽은 동족의 내장마저 뜯어 먹게 만드는 굶주림. 이런 것이 처음부터 마이카의 것이었을리 없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마녀 사제의 손에 잡혔다. 경매장에 섰고 쿠마에야 요새로 되돌아간다. 투야는 이것을 자살이라 했지만 기억을 되찾고 기생생물을 도려내려면 이 수밖에 없다고 마이카는 지긋이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읽자마자 와우!! 이 책 진짜 대박이다!!라고 생각했다. 2017년 휴고상을 수상했고 2018년 아이스너 상 5개 부문을 동시에 석권한 그래픽노블이란 말에도 감흥이 없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그래픽노블에 줄 수 있는 모든 상을 쓸어다가 떠안기고 싶을만큼 애정이 솟는다. 미국계 중국인 마저리 류와 일본계 일러스트레이터인 사나 타케다의 합작품인데 작가 후기를 보면 이 사실이 매우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몬스트리스가 마저리 류의 조부모가 겪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사단장 죽이기>의 소재로 다뤘다가 일본의 뭇매를 맞았던 난징대학살, 중일 전쟁의 면면이 마녀들에게 학대받는 아카닉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굶주림, 생체실험, 성노예, 고문. 마저리 류가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악몽 같은 이야기와 살아남고자 했던 갈망이 마이카를 통해 고스란히 대변될 때 그리하여 마이카가 마녀의 목을 치고 그들을 불태울 때 잔인하지만 통쾌함을 느꼈다. 마저리 류는 이야기한다. 생존자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리고 싶은 욕망으로 이 이야기의 뿌리를 내렸다고. 전쟁과 인종 갈등과 증오라는 토양에서도 살아남은 씨앗들이 피어올리는 싹은 어떤 모습일까? 생존자들이 어엿한 나무로 자라 더 넓은 가지를 드리우고 열매 맺을 다음 권을 기대해본다. 부디 몬스트리스 세계 안팎의 마녀들이 반성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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