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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 삶, 용기 그리고 밀림에서 내가 배운 것들
율리아네 쾨프케 지음, 김효정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제목과 표지만 보면 판타지 소설인가 싶다.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라는 절대 현실일 수 없을 것 같은 제목이 그런 느낌을 부추긴다. 설령 이와 같은 일이 생긴다 해도 결과는 죽음 밖에 없을 것 같아 더더욱 판타지 이외의 장르를 떠올리기가 힘들다. 표지를 자세히 보면 우거진 나무들 사이 종이 다른 각양각색의 원숭이들도 그려져있다. 역시 판타지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에세이 내지는 일대기이며 실화이다. 197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페루 밀림으로 92명의 승객이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한다. 그 안에는 율리아네 쾨프케라는 독일계 페루 소녀와 조류학자인 그녀의 어머니가 타고 있었다.
율리아네의 엄마는 종종 말하곤 했다. "쇠로 만든 하늘을 나는 건 정말 부자연스러운 일이야."(p9) 말 그대로다. 랜사 항공기가 새였다면 뇌우가 치는 하늘을 똑바로 가로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종사는 폭풍전선의 먹구름 속으로 돌진했고 비행기 날개엔 번개가 내리꽂혔다. 날개가 부서졌고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3000미터쯤 되는 상공에서 좌석 세 개짜리 벤치가 율리아네를 태우고 다우림으로 빙글빙글 돌며 떨어져내렸다. 상승기류를 만났던 건지도 모른다. 줄기를 높게 가지를 넓게 드리운 밀림의 나무들도 완충 장치가 되어줬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정말 믿기지 않는 기적으로 율리아네는 살아남았다. 율리아네 이외에 아무도 살아남은 이가 없다는 사실이 더 현실감 있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한 사실이다. 쇄골이 부러졌고 팔다리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었지만 비행기가 폭발하고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사고의 여파로 보기에는 매우 경미한 것이었다. 율리아네는 뇌진탕으로 일렁이는 머리를 일으켜 기다시피 엄마를 찾는다. 모친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살았다면 엄마도 살아있을 거야.' 그러나 엄마도 엄마 아닌 누구의 흔적도 근방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더 지치기 전에 율리아네는 밀림을 빠져나가기로 결심한다. 수색하는 비행선의 소리가 계속해 들려왔지만 상공에서는 빽빽한 밀림 아래 자신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터였다.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는 일념이 율리아네를 일깨웠다. 이후로 11일은 차마 상상하기도 버거운 생존을 위한 사투였다.
율리아네는 살아 돌아왔다. 녹색 지옥의 생환자는 기적이었고 소강상태를 맞았던 수색도 재개되었다. 모두가 율리아네를 반겼다. 그러나 율리아네 이후로는 어떤 생존자도 발견할 수 없었고 피해 가족들은 절망했으며 기레기들은 각종 소설을 써가며 율리아네와 관련한 음모를 더했다. 율리아네가 피해자들을 보고도 자신만 살려고 밀림을 빠져나왔다는 기사는 소설의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기사들은 거짓부렁에 엉망진창이었다. 왜 살아온 것이 너야만 했냐는 편지를 받은 적도 있었다. 기자들은 5년이 지나도록 율리아네를 놓아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가 없었다. 강제로 고향 페루를 떠나야만 했다. 악몽으로 깨어나는 밤이 숱했고 아버지와의 좁힐 수 없는 거리로 괴로워도 했다. 그러나 밀림이 있었기에 진실한 고향 팡구아나가 있었기에 홀로 살아남은 죄책감과 무게와 두려움과 원망까지도 포옹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녀가 밀림을 미워하고 싫어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고 후 40년이 지나서야 쓰여지게 된 이 한 권의 에세이 속에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율리아네의 노력과 고향 팡구아네를 보호하기 위한 동물학자로서의 사명이 담담하고도 깊이 있게 담겨 있다. 이 에세이로 인해 소피 터너의 손에 제작될 영화는 사고 후에 곧장 만들어졌던 영화보다 한층 진실에 가까우리라. 율리아네의 기록을 영상으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