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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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지구는 멸망 중입니다. 아무도 몰랐지만 대륙에서 번성한 바이러스인지 세균인지가 여성들의 몸에 침투해 난자를 갉아먹고 있거든요. 이 불치의 바이러스에 지구 여성들의 모든 난자가 먹히고 나면 지구는 끝장, 아니죠 참, 인류는 끝장나는건데 말예요. 근데 정말 아무도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오늘도 전쟁 중이고요. 어딘가에 기근이 발생해 폭동이 벌어져도 태평양 앞바다에 밀을 갖다 뿌리겠죠. 사람이야 떼로 죽든지 말든지 어차피 인류 역사상 인간수가 처절하게 부족해 괴로웠던 적은 없었고 애들은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거고 머리수는 알아서 채워지게 마련인데 남의 목숨 까짓이죠. 근데 그게 꽉 막혀 버리면?? 어쩌겠습니까. 그냥 멸종하는 거지. 그때가서는 폭탄에 사망하고 아사한 사람수가 아깝고 그럴려나요? 그런데 어쨌든 오늘은 아무도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여기!! 에콰도르 다윈만에 정박해 있는 바이아데다윈호가 있습니다. 다들 아시죠? 갈라파고스? 1835년, 영국의 위대한 과학자 찰스 다윈이 비글호로 이 위대한 자연사 박물관 같은 섬을 탐험한 이후 쭈욱 자연애호가들의 넘치는 애정을 받아오고 있는 섬 말입니다. 바이아데다윈호는 갈라파고스를 관광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배인데요. 인류가 멸망으로 가는 길에 돛 달고 순풍을 맞은 배처럼 빠르게 달려나갈 때 그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연어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본인들은 몰랐지만 현생 인류의 마지막 남은 자손들이자 신인류의 아담과 이브가 되는 사람들이죠. 무능한 선장, 사기꾼, 미망인, 일본인 임산부, 시각장애인, 소수민족 소녀들. 그들은 금융위기라는 미국을 제외한 전 지구적 재앙의 소식을 늦게 접해 미처 발빼지 못한 관광객들입니다. 칸카보노족 소녀 6명이 배에 오른 것은 우연이었지만 후대 인류의 입장에서 보면 맞침맞춤이랄지 때마침 같은 단어를 쓰는 게 더 적합하겠고요. 이들은 파산한 국가의 배고프고 화난 시민들을 피해 엘도라도 호텔에서 바이아데다윈호로 피했고요. 다시 에콰도르와 페루 전쟁을 피해 바다로 나갑니다. 바다에선 난자에 입맛 다시는 바이러스를 피했고요. 산타로살리아섬에 배를 갖다 박으며 멸종을 피합니다. 물고기와 바다새와 비부새와 육지이구아나를 잡아먹으며 생존자가 되었음에 환호하는 그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광 오는 다른 배들에게 구조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글쎄요... 그 답은 갈라파고스와 이들을 지켜보는 제 3의 눈 같은 화자만이 알 일이죠.

"3킬로그램짜리 뇌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한때는 거의 치명적인 결함이 아니었을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갈라파고스라는 제목다운 내용이었다고 생각하며 박수 짝짝짝. 갈라파고스를 생물진화의 야외실험장이라고 부른다잖아요. 그게 인류에도 적용된 이야기였달까요? 물론 거기까지 도달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외부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바이아데다윈호가 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세기의 자연유람선 여행은 어떻게 기획이 됐고 그 배에 올라탄 관광객들의 사연은 또 뭔지. 에콰도르에서 미국으로 베트남으로 스웨덴으로 산타로살리아섬으로 중구난방 뛰어다니는 화자를 쫓아 내달린 백만년의 시간이 책을 덮고 나서도 믿기지가 않네요. 백만년은 뭐나고요?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지구상에 머무른 세월이랄까요? 백만년을 쏜살같이 달리는 우리 인류의 진화 이야기 궁금하시다면 당장 서점에서 갈라파고스를 클릭하십시오. 커트 보니것의 경고를 무시하려는건 아니지만 자연이 선택한 우리 인류의 선함과 무해함을 목격하며 마음은 편안해지고 피식피식 웃음이 나며 급 식욕도 돋을 겁니다. 전 오늘 저녁으로 미역국이 먹고 싶어졌어요. 바다이구아나 요리사면 더욱 좋겠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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