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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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내 시간을 방으로 비유한다면 내 방은 완전 미니멀리즘이다. 하반기 딱히 계획한 것도 없고 업무도 널널하고 협소한 인간관계로 약속도 거의 없이 온전히 취미 생활에만 몰두하는 중. 그러니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 <게으름 예찬>을 굳이 읽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보다 더 게을러지면 사람이 아닌 지경이 되는 걸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헌데 참 희한하단 말이지. 놀면서 느끼는 죄책감이라는 게 있다. 내 시간 내 마음껏 내 요령껏 널널하게 쓰는건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막연히 불안하다. 이렇게 놀다가 인생 뭐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고. 시간 남을 때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야 하나? 재직자 내일배움카드라는 게 있다는데 학원이라도 다닐까? 외국어 할 줄 아는 거 아무 것도 없는데 지금이라도 공부 좀 해볼까? 불안함을 가라앉힐 요량으로 이것저것 하지도 않을 계획도 잠깐 세운다. 게으르기는 한데 멋짐은 일절 없고 느긋은 한데 그 배경에 든든함이 없으니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조마조마하다. 왜일까? 왜 나는 유쾌하게 게으를 수 없는걸까? 그걸 알고 싶어서 펼쳐 들었다.

아이들러는 말한다. 모든 사람은 게으름뱅이거나 게으름뱅이이기를 원한다.(p23) 그러나 현실을 말하자면 근로에 쫓길 때는 여가가 없다고 불평하고 여가 시간이 넘칠 때는 일하지 않는 시간 앞에 초조하다. 나의 이런 기분이 개인적 성향인 줄 알았으나 사실 아주아주 오래전 로마 시대 사람들도 그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안락한 삶은 일종의 업무태만이라 이거다. 알고 보니 한량, 가책없이 놀고 먹는 사람들은 진짜로 대단한 거였다. 갤리선의 노예처럼 일하라고, 성실하라고, 값어치 있는 인간이 되라고 몇 만년에 걸쳐 구속해온 세상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러넘기고 탈출한 자들이니까. 엄지 척! 반사회적인 정도만 아니라면 마음껏 무위도식하자. 공상하고, 방 안에 조용히 앉아있기도 하고, 늦잠에 죄책감 같은 거 느끼지 말고 침대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꼼짝하지 않고서 책도 읽고, 활짝 펼친 상상력으로 하루를 천 년처럼 보내보기도 하고, 도시든 시골이든 목적없이 거닐어도 보고, 새가 둥지를 틀듯 보금자리를 꾸미고, 일상생활과 분리된 취미생활이나 놀이에 빠져도 좋으리라. 시대가 좋아져서 많이들 착각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농노제의 일원이다.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전기장치만 더해졌을 뿐 우리는 그 자각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 시간을 쓰는 해방의 순간을 계속해 미뤄서도 안된다. 남을 위해 시간과 삶 전부를 일에 바치다가 늙어 꼬구라져 휴식할 생각으로 살지 말고 훌륭한 게으름으로 우리 삶을 기름칠하자. 게으름을 피워 행복하고 행복해서 게으름을 피우는 인생을 만들자. 러시아 문학 연구자다운 각종 인용들이 즐겁고 독서에 관련한 작가의 가치관이 아름답고 게으름에 대한 예찬들이 사랑스러워 읽는 내내 좋았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인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전한다. 시간은 행복을 이루기 위한 것, 살아 있다는 것에 다른 좋은 이유는 없다.(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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