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예술계의 중심지라 일컬어졌던 90년대의 소호. 그 거리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사망자는 어맨다 올리버. 필립 올리버의 아내로 부부는 끝내주는 부자에 미술품 컬렉터이며 악명 높은 바람둥이, 방탐함으로 이름 높은 소호의 유명인이었습니다. 필립 올리버는 빗솟을 뚫고 경찰서에 들어가 자백합니다. "내가 아내를 죽였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아니나 다를까 부부의 아파트에서 시체 한 구를 발견합니다. 머리 뒤쪽에 총을 맞아 얼굴이 파손된, 소파에 앉아있는 여인이었습니다. 범인의 자백까지 있었으니 일은 손쉽게 일단락 날 것 같았지만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피해자의 사망시각에 필립 올리버는 LA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증인 또한 수백명. 어떻게 해도 그에겐 범인이 될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현장감식반이 온집안을 탈탈 털었지만 이상 무. 사망 당일 섹스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어맨다의 몸에서 발견된 유전자조차 남편의 것과 일치하지를 않았다네요. 어맨다와 필립 두 부부의 친구인 미술품 딜러 잭은 친구들에게 진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 소꿉친구이자 사립탐정인 호건과 협력해 조사를 시작하지만 사건은 오리무중, 진범을 찾는 일은 영 쉽지 않을 예감입니다.
책을 읽는 초반부엔 남편 필립 올리버가 쇼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술가들 또는 그에 근접한 사람들은 관심종자가 많다라는 편견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소설 사일런트 페이션트를 보면 남편을 살해한 아내에 과한 기사가 대서특필 되고 난 후 그녀의 그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고 하니까요. "희대의 악녀"라는 타이틀조차 돈이 되는 그쪽 세상에서 살해 당한 미술품 컬렉터와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미술품 컬렉터의 소장품들의 가격도 껑충 솟아오를지 모른다, 그걸 계획하고 남편이 완전 범죄를 저지른거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역시 헛발이었습니다. 전 왜 매번 이렇게 엉뚱한 사람만 범인으로 점찍는걸까요?? 추측은 그만~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을 찾아 끝까지 정신 차리고 페이지를 넘길 도리 밖에요.
용의자는 총 다섯 명입니다. 사실 문제의 근원은 필립의 여자관계랄 수 있는데 돈 좀 있는 남자들은 다 그렇고 그렇다고 잭은 변명처럼 얘기하더군요. 젊음을 팔려는 아름다운 여자가 무수히 다가와 무릎을 꿇는데 누가 그와 같은 유혹을 뿌리치겠냐는 거죠. 전처 앤젤라와는 어맨다를 만나며 헤어졌고 어맨다와는 정부 클라우디아를 만나며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전처 때와는 달리 사업감각이 남달랐던 어맨다와는 정리해야 할 사안들이 좀 더 복잡했지요. 남들의 눈에는 어맨다를 죽이는 편이 이혼보다 손쉽지 않을까 억측이 들 정도로 말이죠. 전처 앤젤라에겐 딸에게 아빠를 빼앗고 가정을 파괴한 어맨다에 대한 원한이 있었고 정부 클라우디아에겐 본처 자리에 대한 욕망이 있었죠. 그들 모두가 사랑이라 주장하겠으나 소설 속 검사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조차 "비판하고 전복하고 위반하고 싶은 욕망" 속에서 전진시켜 나가는 이들을 이해하기가 웬만한 사람들에겐 사실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범인을 알고 에필로그까지 읽고도 이렇게 찜찜한 경우는 잘 없는데 정말 찜찜하더군요;;; 남은 두 명의 용의자는 이 책을 읽을 다음 독자를 위해 비밀로 지켜줘야겠지요? 잭의 앞에 그어졌던 금단의 선과 유혹, 믿기지 않을만큼 되바라졌던 그때 그 순간의 유혹을 마지막으로 상상하며 책을 덮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상상해도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그냥 생각 자체를 접으려구요. 으, 소름끼쳐, 이 싸이코패스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