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뭐야? 장난쳐??

제목을 보고 처음 든 생각입니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라니!

도대체 언제부터 두부가 어마무시한 흉기가 되어버린 건가요??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학도병 이쓰카 가쓰오는 실험실 안에서 시체를 발견합니다. 사인은 후두부의 커다란 상처. 흉의 모양으로 봤을 때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당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시체의 머리 근처에 흩어져있는 그것!! 바로 두부!! 두부 이외에는 어떤 흉기도 발견되지 않는 밀실!! 설마하니 범인은 두부 한 모로 일본 병사를 살해한 걸까요???

이야기는 꽤 엉망진창입니다. 그야 한밤중 실험실의 살해 무기로 두부가 거론된 것부터가 어처구니 없지만 실험실에서 일본군이 만들려고 하는 무기라는 게 "공간이동 폭탄" 같은 거거든요. 읽자마자 뭐지 이 SF 같은 무기는? 이라고 생각한 독자가 저만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궁지에 몰린 일본군의 나락 같은 상상력에 코웃음을 치다가 문득 타이완 작가 워푸의 소설 <픽스> 속 밀실 얘기가 떠오르더군요. 밀실은 모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동화 속 얘기 같은 거라고요. 일본 본토를 어디까지나 안전한 밀실로 믿고 있던 일본군이 잿더미로 화하는 앞날을 알고 읽어서일까요? 아니면 두부 모서리에라도 사망했으면 싶을만큼 그 시절의 일본이 미워서일까요? 밀실의 두부 모서리 살인마의 이야기가(그런게 있다면) 제게는 마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동화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일본 독자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겠지만요. 허무맹랑한 결말과 소설 곳곳에서 느껴지는 일본패망의 기운이 꽤 취향인 단편입니다.

이외에도 아가사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떠오르게 하는 "ABC 살인", 사원을 관리하는 회사 인력 시스템 마더컴과의 불편한 관계를 다룬 "사내 편애", 시체의 입에 대파를 꽂은 변태적인 살인사건 "피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와는 달리 상당히 귀엽고 얌전한 "밤을 보는 고양이", 작가의 시리즈 작품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등등 재미있고 엉뚱하고 기발하고 무섭고 아득하게 웃긴 여섯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에 놀라고 너/불합격/에 키득키득 웃다가 좋아하는 케이크가 눈 앞에 있는데 먹지를 못하/는 상황에 원통해하며 마음 아픈 사람은 다 보인다/는 고양이에 위로 받다 보니 냉장고가 텅텅 비면 겨우겨우 쓴다는 구라치 준의 많지 않은 소설을 모조리 탐독하고 싶어졌습니다. 우선은 빚은 톡톡히 받아낸다는 귀욤사악 네코마루 선배의 다른 시리즈들부터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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