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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 ㅣ 내 삶에 힘이 되는 Practical Classics 1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깨깨 그림, 이길태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5월
평점 :
언제 만나도 반갑고 즐거운 친구 빨강 머리 앤. 앤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어제 앤을 읽었더라도 오늘 다시 앤을 만나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겁니다. 특히나 이번처럼 새로운 출판사, 새로운 삽화, 새로운 번역으로 앤이 새 의미를 가졌을 땐 더욱 그렇습니다.
표지를 보고 눈치채셨나요? 출판사 사람과 나무 사이에서 출간된 앤은 이전의 앤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양갈래 머리에 너른 이마, 주근깨 빼빼마른 외양에 오건디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간데없이 빨강인 것은 똑같지만 똑단발의 헤어스타일, 노란 우비, 하얀 장화를 신은 모습입니다. 거기다 우산을 쓴 북극곰은 또 어떻구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왜 앤을 맘대로 바꾸는 거야? 라는 속단은 금물! 실은 이 책엔 두 명의 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 속의 앤 셜리와 앤 셜리가 살았던 시절로부터 백년이 지난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환생한 오늘날의 앤이 말이죠. 그러고보면 환생한 앤의 가장 친한 친구인 북극곰 꼬미도 다이애나의 영혼을 품은걸지도요.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쓴 옛날의 앤과 깨깨 작가의 앤이 이루는 놀라운 하모니!! 원작 앤을 결코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원작의 앤은 앤대로 본래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새로운 장이 펼쳐질 때마다 현대의 앤이 자그마하지만 감동적인 추임새를 넣는 정도랍니다. 두 앤이 펼치는 조화가 참말이지 예쁘니 기존의 팬분들은 걱정없이 책을 펼치셔도 좋습니다.
이번 책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빨간 머리 앤 속의 멋진 구절, 마음에 담고 싶은 말들에 빨강색 파랑색 색색깔 표시를 해놓았다는 겁니다. 굳이 내가 줄을 치지 않아도 띠지로 표시해 놓지 않아도 읽고 싶은 장면, 문장들을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번역도 정말이지 맘에 들구요. 어른이 되어 읽은 앤에서 앤이라는 존재 이상으로 감탄했던 부분이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자연에 대한 묘사인데요. 역자님이 그런 점에 심혈을 기울여 번역하신 느낌이 듭니다. 문장 속 풍경들이 그림처럼 살아나 제 눈에 콕콕 박히는 게 비단 깨깨 작가님의 삽화 때문은 아니라고 장담 또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서를 주로 번역한 역자님의 역량을 의심했던 게 죄송스러울만큼 가독성도 좋고요. 앤과 마릴라, 앤과 매슈, 앤과 다이애나의 대화 속에 은은하게 흐르는 유머들이 잘 표현되어 읽는 도중 쿡쿡 웃는 일도 꽤 여러번이었습니다. 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을 낭독해 오디오북을 만들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렇게 술술, 이렇게 입에 딱 붙는 대화들로 번역해주신 역자님께 무한 감사할 따름입니다. 깨깨 작가님의 귀여운 삽화야 표지만 봐도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앤의 줄거리에 집중했던 리뷰를 몇 번 썼던터라 이번엔 책이 가진 느낌을 간략하게 소개하자고 결심했는데 쓰다 보니 또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직 읽어야 할 앤이 한 권 더 책상에 놓여있는 상태인데 다음 앤은 리뷰를 어떻게 쓸지 벌써부터 고민되네요 ㅎㅎ 곧 만날 앤은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의 원화가 삽입된 출판사 더모던의 책인데요. 책의 외양만 보면 두 권이 다 맘에 드는데 요며칠 읽은 이길태 역자님의 앤이 참 좋았어서 박혜원 역자님의 앤이 어떻게 읽힐지 걱정도 되고 더 많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다음 앤과의 만남도 이번 만남처럼 기쁘고 행복하고 만족스러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