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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고 온 Go On 1~2 세트 - 전2권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 만나는 더클라스 케네디의 작품입니다. 첫만남에 808 페이지의 거대한 장편이라니 좀 부담스러운가 싶었지만 읽자마자 우와우와 감탄성을 터트리며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데드 하트>가 출간됐을 때 작가의 명성을 접했고 '금방 읽힌다, 순식간에, 쉴틈없이, 후루룩, 뚝딱'의 수식어로 가독성을 칭찬하는 리뷰에 호기심이 일었는데요. 직접 읽으니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1971년부터 1984년까지의 시간이 하룻밤새 후다닥 흘러가더군요. 오랜만에 책으로 철야했는데 그럼에도 완독 못하고 출근해서 하루종일 안절부절 못할 정도의 재미였습니다. 808 페이지가 더는 많게 느껴지지도 않았구요. 결말에 대한 제 궁금증에 비해 남은 페이지 수가 적어서 대충 끝날까봐 오히려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결말이 별로였냐면 제 대답은 놉!! 어떻게 보면 좀 암울할 수도 있는 끝이었지만 그마저도 좋았던, 정말 잘 만들어진 소설입니다.
앨리스 번스는 열다섯살 때에도 서른을 앞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가족으로 고통받는 중입니다. 오죽하면 가족과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둥 엄마 아버지와 함께 천국에서 살 수 있다는 둥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모르몬교 신자를 앞에 두고 "그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죠!" 라고 일갈할 정도니까요. 1920년대에 태어난 앨리스의 부모님은 애정없는 결혼 생활을 20년 넘게 지속하며 징글징글하게 싸웁니다. 집이 싫은 아버지는 툭하면 바람을 피고 직장이 있는 칠레로 도피하구요. 어머니는 결혼에 대한 환멸과 무능에 대한 핑계를 자식에게서 찾으며 앨리스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려 합니다. 명문대생인 진보주의자 큰오빠는 보수성향의 아버지를 질타하며 끊임없이 싸움을 만들고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아이스하키 선수로써의 꿈을 잃은 작은 오빠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불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앨리스 번스는요? 가족이라는 굴레를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엄마, 아빠, 오빠들과의 인연을 끊지 못해 여기저기를 헤매며 허덕입니다. 친구 칼리가 자살했을 때도, 테러로 사랑하는 남자가 사망했을 때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번에야말로 끝이야!! 라고 소리쳤지만 결심이 완벽한 실행으로 마무리 된 적은 없습니다. 자식에게 죄책감을 덧씌우려는 엄마는 그럼에도 자식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고요. 책임감 없는 아버지는 그럼에도 딸에게는 관대하여 가족에 대한 몇 안되는 좋은 추억에 이바지 했습니다. 정의로운 척 하지만 비열한 짓거리를 저지른 큰오빠는 그럼에도 여동생이 큰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입니다. 동생을 범죄의 공범으로 만든 작은 오빠는 그럼에도 동정이 갈만큼 불쌍한 사람이라 안쓰럽습니다. 밉고 싫고 불행만을 던지는 것 같은 가족이지만 그들에게 존재하는 "그럼에도"를 앨리스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앨리스의 그런 고뇌가 가족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던 제게도 뼈에 사무치는 공감을 이끌어내더군요. 물론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요. 번스가는 매일이 리히터 8;;
고통의 근원을 알지만 도무지 뿌리를 파헤쳐 버릴 수 없는 앨리스의 아이러니가 소설의 앞면이라면 70년대 80년대 미국의 역사적 사건들은 소설의 뒷면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 전쟁, 독재, 자본의 횡횡, 인종차별, 동성애, 에이즈, 마약, 페미니즘, 테러를 배경으로 으르렁대는 번스가의 막장 가족사가 막을 내릴 때 앨리스의 삶이 앞으로는 좀 수월하려나, 수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이십년 후 라는 에필로그가 있어서 의문을 해소해 주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럼 소설의 완성도가 떨어졌겠죠? 바람직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을 앨리스의 모든 시간을 언젠가 또 한번 회고한다면 그때는 결말이 좋은 희극이기를. 혹시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에겐 바래선 안되는 결말일까요? 얼른 그의 다른 작품들을 만나 탐구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