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평점 :
아주 옛날에 엄마가 산을 내려오다 발목을 삐끗하신 적이 있다. 퉁퉁 부은 엄마 발목을 보고 놀란 기억은 있는데 엄마와 함께 병원을 간 기억이 없다. 내가 다쳤었다면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데리고 병원을 가고 챙기고 보살펴 주었을텐데 난 아마 다른 일이 있다는 핑계로, 그것도 아니면 별 거 아니라는 말씀에 괜찮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에 치료 받았다는 엄마 말만 듣고 있었을 거다. 바빴다손 지금 기억에도 없는 걸 보면 결코 엄마 발목보다 중요한 일은 아니었을텐데, 비가 오고 날이 흐렸던 어제까지도 그 때 접지른 발목이 시큰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결코 별 거 아니지도 않았을텐데. 아픈 엄마를 쉬게 하고 밥 한 끼는 차렸던가 어쨌던가. 허랑방탕한 도쿄 생활에 푹 빠져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의 소식에도 집에 내려가지 않은 마사야를 보며 없는 기억을 찾아내려 애쓰다 푸욱 한숨을 내쉰다. 마샤야도 나도 어쩜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고단하게 일하며 지우개처럼 작아져버린 엄니, 자식에게 사랑을 불어넣느라 제 몸은 쪼글쪼글해진지도 모르는 엄니, 인생을 뚝 잘라 자식에게 나눠주며 어쩔 수 없이 더 작아져버린 엄니의 인생. 갑상선 암 치료 후 다시 위암이 발견되어 병실에 누운 어머니를 보며 작가 릴리 프랭키, 도쿄 타워의 주인공 마사야는 책을 쓰기로 결심을 한다. "모자 가정이라서 어렸을 때는 마더 콤플렉스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엄니 이야기를 남한테는 되도록 하지 않았어. 하지만 소중한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게 왜 안될 일이야? 왜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면 웃긴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그런 소리에 신경을 쓰는 통에 엄니에게 다정한 말 한 마디 못했었는지도 몰라."(p501) 부모의 별거가 확정된 후 꽤 독특한 형태로 결혼한 고모네 문간방에 살림을 풀었다. 아버지 없이 엄니와 마사야 두 사람이 함께. 다시 외할머니가 있는 탄광촌 치쿠호로 이사 가며 개구쟁이로 활개치는 유년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핑계로 엄니에게 독립했던 벳푸의 시간, 지나친 자유가 방종으로 이어져 타락했던 도쿄의 대학생활은 엄니가 함께이던 유년의 시간과 대조하면 탁하고 거칠기만 하다. 아버지가 철새조차 안되는 뜨내기처럼 마사야의 인생을 간만 보고 스쳐갈 때 엄니는 마사야가 인생을 쉬이 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되어주었고, 깜깜한 밤에도 솜사탕처럼 피어오를 벚꽃 같은 추억들을 남겨주었고, 무엇보다 마사야란 인간의 단단한 틀을 잡아주셨다. 그런 엄니가 아프다. 마샤야는 어쩔 줄을 모른다.
"상을 받고 책이 많이 팔린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이 책을 읽고 한참이나 목소리도 듣지 못했던 부모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든가 뭔가 쑥스럽지만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자고 불러냈다는가 하는 독자의 반응이었다"(p510) 책을 읽는 중간에 문득 생각이 나 엄마한테 전화한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작가의 다른 독자들에 이심전심 하며 웃는다. 날씨만 괜찮으면 아무 이상 없다는 엄마와의 통화가 기억나 아침부터 창을 연다. 마사야의 마지막 인사처럼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참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