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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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었는지 엄마 텃밭에서 토끼가 잡힌 적이 있다. 산 앞자락에 있는 텃밭이라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엄마 얘기에 신기해했는데 무슨 생각이셨는지 그 토끼를!! 자취방 냉동실에!! 넣어두고 가셨다. 아마 아버지가 먹자 한 걸 비위 약한 엄마가 우리 핑계대고 버리고 간 게 아닌가 싶은데, 비위는 좋지만 귀찮고 낯선 건 딱 싫은 내가 거절할 게 뻔하니까 나 없을 때 슬쩍 갖다놓곤 압력솥에 쪄먹으라고 전화가 왔다. 검정봉지를 열어보니 토막도 안난 토끼가 목만 잘린 채로 바알갛게. 며칠 전까지 살아있었을거 아니야, 죄책감에 버리지를 못하겠더라. 마지못해 압력솥을 꺼냈다. 후딱 헤치워야지. 절단도 못낸 토끼를 통째로 넣어 사십분인가를 돌렸는데 걱정했던 것만큼의 냄새는 안났는데 질겼다. 고기가 뼈랑 분리되기를 거부하며 입에서 껌처럼 씹혔다. 다시 렌지에 올려서 더 쪘으면 괜찮았을 수도 있지만 실은 국물이 더 엉망이었다. 집에 있는 양념을 대충 때려박은 그 맛은 요리 초초보가 뭘 더 한다고 구제될 맛이 아니었다. 조리 안된 식재료를 쓰레기통으로 보내는 일은 무서워하면서 조리가 되면 그 때부터 막나가는 기질이 있는 나는 "엄마! 고기가 이상해! 맛이 없다! 앞으로 이런 거 가져오지마!" 전화 한 통 날리고 과감하게 버렸다. 한 입만 먹은 그때의 토끼를 여태 잊고 살았다. 줄리언 반스가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영영 떠올릴 일이 없었을텐데 <또 이따위 레피시라니>가 기억을 성큼 끌어왔다. 그가 두 번 다시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초콜릿 소스를 친 산토끼 요리 때문은 아니고 사슴고기와 함께 주문한 다람쥐 고기 때문이었다. 유기농 쇠고기 농장에서 추가로 받은 다람쥐 고기. 절단을 요청했는데 주인이 깜빡했나보다. 어떻게 봐도 벌거벗은 죽은 다람쥐 앞에서 이건 홍보가 잘된 쥐일 뿐이야! 괜찮아! 잘될 거야! 자기암시를 해봐도 요리할 엄두가 안났다는 줄리언 반스. 결국 요리를 포기하고 다른 학생에게 줘버렸다는데 까짓 다람쥐! 요리 좀 하면 어때서!! 벌거벗은, 어떻게 봐도 토끼인 고기 앞에서 별 충격없이 압력솥을 꺼낸 나는 지나치게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였던 걸까. 토끼한테 괜히 미안해지려 그러네.

"나도 오랫동안 구간과 신간을 가리지 않고 요리책 수집에 열을 올렸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요리책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현재 2천 권가량 있는데, 아주 간혹 극히 일부만 참고로 볼 뿐 이다."(p9)

첫 페이지인 9쪽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깜빡 속았다. 그저 먹고 죽지 않을 요리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면서 요리책이 2천 권? 말이 되냐고. 12 페이지쯤 가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고 15 페이지로 가서야 영국 요식업계의 대부라는 "마크 힉스"가 쓴 글임을 알았다. 9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니 그때서야 내 눈에 보이는 추천사! 아무렴. 요리가 직업인 사람도 아닌데 2천 권은 너무 했지! 그러나 알고 보니 소장 요리책이 100권은 넘어간다는 줄리언 반스!! "우리 집 부엌의 접근성 높은 중앙 선반에는 요리책이 스물네 권 있다. 그 위의 높은 선반 두 층에는 서른 네 권, 벽에서 우묵 들어간 데에 세탁기가 있는데, 그 위에 설치된 선반에는 스무 권으로 이루어진 지원부대가 대기하고 있다."(p51) 현재 우리 집에는 요리책이 단 한 권도 없는데 먹고 죽지 않을 요리조차 잘 안만드는 이유가 혹시 요리책이 없어서인 건 아닐까? 우선 나도 요리책부터 여럿 소장해야 하는 걸까? 소장책 이상으로 읽은 요리책이 많을 듯한 그가 각종 요리책들을 소개한다. 어떤 레시피는 좋아서 어떤 레시피는 싫어서 어떤 레시피는 이해가 안가고 어떤 레시피는 요상해서, 레시피와 관련한 얘기들은 거의 다 재밌다. 참고로 내가 그 요리를 모르고 해본 적도 없고 맛이 상상이 안가는데도 그렇다. 요리 실패기와 성공담엔 공감백배하고 레시피 해석하는 법엔 맞아맞아 함께 웃어가면서. 나는 아직 해본 적이 없지만 많은 손님을 초대했을 때를 대비한 특별한 팁도 알려준다. 주스 책은 있지만 주스기는 없다는 그처럼 에어프라이기는 없으면서 <365일 에어프라이기 요리법>의 책소개를 들여다 보고 있는 나, 이걸 사야 해? 말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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