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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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마 츠요시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상상하며...



나오키, 잘 지내니?

네가 이 편지를 받아볼 일은 없겠지만 문득 네 생각이 나서 편지를 쓴다. 교도소를 나와 처음으로 맞는 봄이어서 그런지 요즘 네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우리 세 식구 함께 갔던 벚꽃놀이도, 교도소 담장 너머로 꽃을 보며 네게 편지 쓰던 날도 문득문득 떠오른단다. 미키랑 제수씨랑 같이 벚꽃놀이는 다녀왔니? 아무리 바빠도 가족들이랑 함께 하는 시간은 소홀히 하지 말아라.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텐데 또 이상한 소리를 하고 말았구나.

나오키, 돌이켜보면 나는 후회할 짓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새삼 이제와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그게 내 탓이라고 생각했단다. 네가 나를 때리면서 '형 탓이야, 형 탓이라고' 통곡했을 때도 나는 그래서 저항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했다면. 공부하지 않더라도 성실하게 학교를 다녔다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또 경찰에 체포될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그래서 엄마가 경찰서에 올 일도 없이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쉬고 주무실 수 있었다면 다음 날 과로로 쓰러져 순식간에 우리 곁을 떠나지는 않았을텐데. 단 한번도 그 날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 설마하니 더 큰 잘못을 내가 또 저지르게 될 줄은 그때엔 정말 몰랐다.


엄마의 꿈이었으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너를 대학에 보내고 싶었단다. 너만큼은 아버지와도 엄마와도 나와도 다르게 살게 하고 싶었다. 그랬대도 오가타씨를 죽일 생각따윈, 정말이지 돈만 훔쳐나올 생각이었는데.... 그 순간에 왜 톈진 군밤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아냐, 실은 알고 있다. 우리 세 식구가 제일 행복했던 때니까. 네가 열심히 군밤을 까던 모습이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를 않는다. 주머니 양쪽에 너를 위한 돈과 너를 위한 군밤을 가득 담고서 나는 좀 행복했던 것 같구나. 살면서 그때만큼 일이 잘 풀린 적이 없었거든. 그런 순간을 경계했어야 하는데 너도 알다시피 나는 멍청하니까. 쇼파에 앉아 티비를 켜고 채널을 돌렸다. 아무도 없을거라 생각한 집에서 오가타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고 비명을 질렀고 어떻게든 그 소리를 막아야한다는 생각 밖엔 없었다. 머리속이 새하얗게 비어졌던 것 같다. 그 뒤에는 너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만큼 더는 설명하지 않으마. 매일 밤 속죄한다. 오가타씨께 저지른 내 죄는 어떤 형벌로도 씻기지 않겠지. 죽는 그날까지 속죄하고 속죄하고 또 속죄하고 살겠다고 다짐한다.


........ 미안하다, 나오키. 살인자의 가족으로 살게해서. 내 죄를 네가 함께 감당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네 편지만 보고서 괜찮을 거라고 믿어서 정말로 미안해. 네가 성실하고 네가 착하고 네가 똑똑하고 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나의 죄에도 불구하고 네가 잘 살고 있으리라 믿어서 미안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제때 대학에 가지도 못하고 직장에서 잘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만들어서, 네가 겪은 고통을 네 아내와 딸에게까지 전가시켜서 정말정말 미안하다. 그러니 아무 죄책감도 가지지 마렴. 그날, 네가 노래를 불러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살인도 희생도 종교도 없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 노래를 지금도 기도마냥 매일 듣고 있다. 너와 가족들이 천국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꿈꾸며 나는 이곳에서 묵묵히 나의 죄를 잊지 않고 반성하며 살아가마. 행복해라. 건강하고. 사랑한다.


츠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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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살인강도를 저지른 형 츠요시.

범죄자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한평생을 살아야 하는 동생 나오키.

살인자의 동생을 친구로 학생으로 이웃으로 직장동료로 연인으로 배우자로 둔 사람들의 이야기.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 독자인 저 이상으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도 답을 내리기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이 저지른 범죄로 남은 생은 영원히 불행으로 결정나버린 것만 같은 나오키는 더더욱이요.

비극의 힘센 여파에서 노력하는 그의 행복을 응원해도 될런지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피해자의 가족 또한 나오키만큼 또는 그 이상의 지옥길을 걸었을테니까요.

그런데 오가타씨의 아들이 그러더군요.

"이제 그만 됐다고 생각하네. 이걸로 끝내세. 모든 걸."(p466)

적어도 이 소설에 한정해서, 츠요시가 아닌 나오키에 한정해서, 저는 이만 행복해져도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담아 츠요시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결말까지 보신 분이라면 어라? 편지가 소설 내용과 다른데? 하실테지만요.

나오키가 멈추지 않고 살아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조금 강력하게 담아보았달까요.

왜 태어났을까 행복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은 잠시 미루어두고

오늘은 그가 가족들과 함께 봄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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