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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 - 앤드루 숀 그리어 장편소설
앤드루 숀 그리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4월
평점 :
밤을 잊고 읽었습니다. 자기 전에 조금만 읽어보자 했는데 결국 새벽 3시까지 잠 못들며 웃고 떠들었네요. 누구랑요? 동성애자, 무명작가, 불륜남, 가정파탄범, 바보 사랑꾼. 정체성이 뭐가 됐든 평범치 않은 남자. 곧 쉰 살이 되는 아서 레스랑요.
나이 때문에 우울한 레스에게 어느 날 전남친 프레디의 청첩장이 도착합니다. 9년을 사랑했는데.. 레스의 향수, 레스의 양복, 레스의 침대를 어지간히 누렸던 연하의 꼬맹이가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보내다니요ㅠㅠ 아니 잠깐! 쓰고 보니 제가 좀 헷갈리는데 어쩜 프레디의 아버지로부터 도착한 청첩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아들은 한번도 너랑 어울렸던 적이 없어!" 라며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던 프레디의 양아버지는 사실 레스의 오랜 친구거든요. 카를로스라고 썩 좋은 친구는 아니지만 종종 레스를 구해주는 밉지 않은 녀석입니다. 어쨌든 전남친의 결혼식은 레스의 골머리를 썩힙니다. 우물 같은 인간관계가 잔뜩 포진해있을 결혼식엔 결코 참석할 수 없어요. 무슨 비웃음을 사려고. 그렇다고 결혼식에 안가고 집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습니다. 카를로스와 기타등등이 얼마나 고소하게 입방아를 찧겠어요. 그런 그에게 베를린 소인이 찍힌 편지 한 통이 구원이 되어줍니다. "선생님, 겨울학기에 저희 학생들을 가르쳐주세요." 옳거니! 이거다!! 레스는 서랍을 뒤져 무명작가에게 보내진 각종의 초대장을 찾아냅니다. 뉴욕의 작가 인터뷰, 멕시코시티의 문학축제, 토리노의 문학 시상식, 인도의 작가 휴양지, 일본의 유명맛집 탐방 기사쓰기, 그리고 다시 샌프란시스코의 그의 집까지 도착하는 여정. 이 모든 여행이 끝나 있을 즈음엔 악몽같은 프레디의 결혼식도 쉰 살의 끔찍한 생일도 훌쩍 지나있겠지요. 설령 그 여행길에 전전전 애인을 만나거나 천재작가이자 유부남이었던 전전 애인의 배우자를 만나거나 서른쯤 차이나는 대학생과 사귀다 헤어질지언정 어쨌든 이곳보다는 나을 겁니다. "유감이지만 그때 외국에 있을 예정입니다. 프레디와 톰에게 사랑을 전하며." 의기양양하게 답장을 쓰고 (약간의 과장을 더해) 내 돈 한 푼 들지 않는 세계일주에 탑승한 레스의 이야기가 어땠냐구요?
눈물나게 공감이 갑니다. 끝장나게 재미나요. 중간중간 엄청 웃기고요. 재치가 홍수를 이뤄요. 무엇보다 레스라는 인물이, 그의 애인들과 친구들과 그들의 애인들과 그 밖의 여러 인물들이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퓰리처상 수상작들은 원래 이렇습니까? 이렇게 특출나게 재미난가요?? 레스는 사랑스런 남자에요. 내내 그 자신이 "형편없는 작가, 형편없는 애인, 형편없는 친구, 형편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고 또 어쩌면 누군가의 지적처럼 자기 자신이 되는 솜씨마저 형편없었을지 모르지만 누가 뭐래도 쉰의 그는 성공한 인생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저의 쉰도 부디 레스 같았으면. 아니면 너무너무 질투날 것 같거든요. 읽고 나면 피곤이 싸악 가시고요. 고용량 비타민을 삼킨 것처럼 마음에 활기가 일어요. 번역가님의 말씀처럼 대단히 건강하게 느껴지는 책이므로 피로회복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꿀잼폭발! 대박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