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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평점 :
사람은 어느 때에야 확실하게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고가 나자마자 심장이 멈춘다면 고민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장이 뛰고 있다면?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지만 어쨌든 숨을 쉴 수 있다면? 장밋빛 뱔그레한 뺨에 보솜보솜한 손가락, 알사탕 같은 발가락 끝까지 온기가 느껴진다면? 설령 뇌의 거부 전부에서 뇌파가 발생하지 않는단들 그를 두고 곧장 자식의 '사망'으로 기정사실화 할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살아있지만 어디까지나 시체로 자식을 묻어야 한다고 인지하는 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가오루코, 가즈마사 부부는 어린 딸의 초등학교 입학 면접을 앞두고 있다. 바람, 별거, 이혼의 수순을 밟아가면서도 자식 일에는 타협할 줄 알았던 이들의 평화는 그러나 전화 한 통에 단박에 깨어진다. 딸이 수영장에 빠졌으므로. 현재 의식이 없으며 어쩌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이므로. 의사는 뇌사 판정을 받을 것인지 부부의 의사를 묻는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날. 가족은 더는 병원에 기거하지 않는다. 가즈마사의 회사에서 개발한 신기술은 의식이 없는 딸의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판막이식형 호흡기로 외부에 주렁주렁 장치를 달 필요도 없다. 가족은 미즈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식물인간인 아이의 팔을 들어 손님에게 인사하게 하고 아이를 데리고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간다. 열심히 더 연습해 둘째의 생일날에는 친구들이 말을 걸때마다 손을 움직이게 하고 초를 후 불어 꺼트리면 박수까지는 힘들어도 양손을 움직이게 하리라 결심도 한다. 기술의 발전은 딸의 의식없는 얼굴 위로 표정까지 찾아줄 것이다. 전기자극에 의한 조건반사일 뿐일지라도 표정이 있는 편이 훨씬 나을테니까. 오로지 그녀 가오루코에게만은 삶이 희망차다. 남편도 아들도 어머니도 동생도 조카도 이 희망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 가족이 더는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누구도 딸 미즈호를 살아있는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절이 느꼈을 때 가오루코는 분노하며 칼을 치켜든다. 모든 식구들이 모인 둘째 아이의 생일잔치에서. 칼은 딸의 가슴팍으로 향하고 있다.
"지금 제가 이 아이의 가슴을 칼로 찌른다면 저는 살인범인가요?" (p434)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어가 잠든 집>을 통해 의학의 진보가 가져온 새로운 가치문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미즈호가 메이지 유신 즈음에 물에 빠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구사일생으로 물에서 건져냈다해도 자가호흡이 불가능한 순간 즉시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는? 보시다시피 병원으로 이송된 아이는 인공호흡기와 여타의 기술에 의존하여 어디까지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생명을 호흡과 심장박동으로만 오롯이 해석한다면 말이다. 부모는 죽은 자식이라며 아이를 가슴에 묻을 이유도 없어진다. 과학이 허락하는 내내 숨쉬는 아이를 내 품에서 입히고 씻기며 보살필 수 있다. 어쩌면 식물인간인 아이를 걷게 하는 날까지 오게 될지도 모른다. 죽음이 과학에게 압도 당하는 순간이다. 이를 무조건 좋다거나 무조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미즈호의 팔이 움직였을 때 혐오감을 숨기지 못했던 시아버지나 연구원 호시노의 애인에게 공감한 것만은 사실이다. 책에서도 언급됐듯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라도 목격한 듯한 공포감이었겠지. 그러나 그 프랑켄슈타인에게도 영혼은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영혼을 대체해 육체에 머무를지도 모를 한계없는 과학은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까?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떤 답을 바라며 이 소설을 썼을까? 인어가 정말로 잠든 집이 어디인가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먹먹한 와중에도 빙그레 웃음이 났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문제이지만 작가와 온전히 마음이 통한 느낌으로 후련하게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