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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소리만 들으면서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이범선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보노보노의 원작자 이가라시 미키오의 에세이입니다. 원작 만화가 아니라 김신회 작가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만 읽어서 실은 원작자님 성함도 잘 몰랐어요. 호감도 비호감도 없는 거의 좀 무관심한 상태였는데 이 책을 선택한 건 어디까지나 표지 때문이었죠. 불꽃이 빵빵 터지는 도시의 저녁 풍경에 매료되었달까요. 그 아래 주저 앉아 있는 보노보노와 보노보노 아빠도 넘 귀엽잖아요. 표지가 다한 책이라도 상관없어 라는 생각으로 펼쳐들었는데 작가님의 생각이 소소하게 재미납니다. 다시 한번 덧붙이지만 '소소하게'가 뽀인트에요.
모든 것은 기분 탓이라는 신조 1번. 에필로그까지 십여 페이지도 안남았는데 결말을 확인 안하고 덮어버리는 독서 습관. 작가이면서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염원하는 태도. 좀 독특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요 사이에는 소설책은 아예 구매를 안하신다는데요. 그 이유가 너무 재미있는 책이 많아서래요. 너무 많은 이야기에 질려버려서 실은 이십 년도 전부터 소설 외의 책도 잘 안읽는다구요. 맛있는 음식도 눈 앞에 지나치게 포진해 있으면 물리는 것처럼 소설도 그러하시다구. 뭔가 알 것 같으면서 잘 모르겠는 설명되시겠습니다. 취미가 서점 가기, 영화관 가기인데 난청이 있으셔서 영화관이 괜찮으실까 했던 걱정도 잠깐. 영화관만 가면 주문신답니다. 코 골면서 자다가 맞은 적도 있대요;; 언니들이 나이 드니까 암만 재밌어도 순간순간 졸게 되더라, 나는 영화관만 가면 필름이 끊긴다, 영화관도 젊어서 많이 가라 해서 웃었는데 말예요. 영화관에서 딥슬립 하는 분이 여기 또 한 명 있을 줄이야. 갖가지 자랑, 이를테면 상을 타거나 영화를 개봉하거나 출판을 하거나 사인회를 열었던 에피소드도 애교처럼 등장하구요. 젊은 사람들이 연애를 안하거나 아이를 안낳는 문제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일 같다, 재미있는 것도 좋지만 모두가 편한 쪽이 낫지 않나, 어쩌면 이것도 진화의 방향인지 모른다 하셔서 공감했어요. 지구가 선택한 진화의 방향으로 내가 무의식 중에 쫓아가는 상황, 나의 비혼은 지구의 선택이다!! 라고 생각하니 간밤 엄마의 전화 잔소리에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쑥이 통통해서 이만큼 캤다로 시작한 얘기가 어떻게 결혼으로 이어지는지 이것만은 아직 미스테리지만요.
총 30개의 챕터로 목차가 구성되어 있는데 제일 인상적인 곳은 마지막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이" 입니다. 십여 페이지를 남기고 책을 덮는 작가님의 버릇대로라면 아마 이 바닥은 못읽었겠죠? 우리는 흔히 사람을 책에 비유하잖아요. 작가님의 책의 비유는 좀 운명론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로 책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요. 이미 기록되어 있는 나라는 책이 주어져있고 그 페이지대로 매일을 읽으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구요. 우리는 우리가 작가인 줄 알지만 알고 보면 독자더라 하는 그런 거.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든 궁금하지 않든 재미있든 지루하든 고통스럽든 아프든 행복하든 남아있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밖에 없는 77억 1,457만 6,923개의 책들이 세상이라는 책장에 꽂혀있는거라 생각하니까 어쩐지 심오해지는 기분입니다. 왜 출간됐는지 모르겠는 책을 봐도 앞으론 분노하지 않으려구요. '내가 책이면 나 빼곤 읽고 싶어하거나 궁금해하는 독자는 아예 없을거야. 아니야 엄마라면..' 이라고 생각하니 엄마 잔소리도 용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