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총총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꽤 옛날 배경의 책이로구나. 검정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는 사키코를 보며 생각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다이얼을 돌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까 궁금해하면서. 설마하니 78년의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말이죠. 꽤가 아니라 엄청 옛날이지요? 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에 사키코는 출산을 합니다. 상대는 같은 직장의 유부남. 처자식이 있는 남자라도 사랑하니 상관없었던 걸까요? 미혼모로 딸 지하루를 낳습니다. 밤업소로 흘러들어간 19살, 이후로도 주욱 사랑만을 좇는 부평초 같은 인생입니다. 남자에게 홀딱 반해 돈도 주고 몸도 주고 마음도 주고. 아버지 없이 홀로 몸으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도, 하나뿐인 딸도 뒷전입니다. 사랑이 너무나 달콤해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나 모래알 같은 연정을 키우며 그 연정에 버려지거나 버리거나 다른 연정으로 덧씌우는 것으로 인생을 소모하는 닳고 닳은 여자. 고작 이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어야 하다니 기운이 쑤욱 빠집니다. 덮을까 말까. 스트레스로 굳은 어깨를 주무르며 고민하는 사이에도 이상하게 눈은 글자를 따라갑니다. 사람은 비호감인데 글은 비호감이 아니라니 그것 참 이상한 일이지만 한 챕터가 끝나고 나니 이런이런. 더는 사키코가 없습니다. 시점은 완전히 바뀌어버렸고 저는 이 책을 완전히 착각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키코가 아니라 그녀의 어린 딸 지하루가 이 다양한 시점의 삶에서 가장 중심된 축이라는 것을요.


총 아홉 명의 화자가 등장합니다. 남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여자 사키코, 지하루는 13살 여름방학 때 잠깐이지만 엄마인 그녀와 함께 삽니다. 엄마보다 더 커버린 가슴에 처음 브레지어를 착용한 것도 이 때입니다. 얼마나 무심한 엄마인가요. 뼈를 깎는 마음으로 의대생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이쿠코, 16살이 된 지하루는 그녀의 도움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합니다. 지하루 뱃속의 아이는 그녀 생각처럼 이쿠코의 핏줄이 맞았을까요? 이복 오빠를 사랑하는 스트리퍼 레이카, 19살의 지하루는 레이카의 자리를 물려받아 로망좌에서 알몸으로 춤을 춥니다. 지하루에게 호감을 보인 몇 안되는 여성이지만 모르겠습니다. 그녀 인생도 못지 않게 나락이었으니까요. 불평투성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노총각 하루히코, 22살의 지하루는 마흔도 넘은 그와 결혼을 합니다. 남자는 무상쾌락을, 시어머니는 무상노동을 바라는 지옥 속으로 걸어가며 지하루는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그녀 머리를 쪼개 보고 싶었습니다. 불륜을 의심하는 남편으로 평생을 고통받은 기리코, 28살의 지하루는 생후 6개월도 되지 않아 내버린 딸이 시어머니 손에서 크고 있는 줄을 알았을까요? 아참, 그녀는 지하루 인생의 두 번째 시어머니입니다. 젊은 날의 이혼을 훈장처럼 달고 사는 환갑의 시인 도모에, 38살의 지하루는 그에게 작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완성될 그녀의 소설 속에서 시인은 틀림없이 헐떡이고 있을테죠. 이 때의 혐오스런 밤을 지하루의 소설 속에서 그가 꼭 마주하길 바랍니다. 살인방화범으로 18년째 도피 중인 주지, 44살의 지하루를 찾아와 그녀의 시집을 받아간 그는 죽어가는 사키코의 연인입니다. 지하루를 욕망하지 않은 유일한 남자는 대신에 살이 부러진 낡은 우산으로 지하루에게 장애를 안깁니다. 양 겨드랑이 아래로 목발을 짚은 채 아래로 아래로만 굴러떨어지는 삶이란. 편집자로도 남편으로도 실패한 인생 야스노리, 45살의 지하루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에 그를 만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야스노리는 드물게 지하루의 몸이 아니라 지하루의 경험과 기억을 욕망합니다. 약탈적이라는 점에서 그도 다른 남자와 다를 바는 없어요. 어느 땅에 뿌리를 박는 일도 먹는 일도 사랑하는 일도 귀찮기만 한 90년생의 아가씨 야야코, 성인이 된 딸의 곁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지하루에게 저는 이제 연민이나 동정을 배제한 채로 안부를 전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신가요?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잘 지내고 계십니까? 당신의 남은 삶이 저는 계속해 궁금합니다.


훗카이도의 항구도시. 삿포로와 오타루, 아사히카와를 떠도는 지하루의 삶은 내도록 타인의 반사된 욕망에 파도를 타며 흘러가는 모양새입니다. 그 욕망 어느 구석에도 지하루의 것은 없다는 점에서 사키코보다 더욱 질이 나빠요. 먹고 마시고 움직이고 살아가지만 어딘지 식물인간 같은 모양새라고 할까요. 단순히 자존감이 낮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녀는 운명에 아무런 응어리가 없는 것 같거든요. 불평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좌절하거나 증오하거나 두려워하는 불행한 인간의 보편타당한 그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자기연민의 파편조차 없이 시종 일관 덤덤하게. 생이 불행한 것을 당연한 일처럼 살아갑니다.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어쩜 이렇게 편안한 걸까요? 쓰면서도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지만 이 책을 함께 읽으신 독자라면 공감해 주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그녀는 안팎으로 정말이지 편안해 보입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하다못해 마흔이 넘어 얻은 육체적 장애도 그녀를 괴롭힐 수 없는 것처럼 보여요. 많고 많은 불행에도 지하루가 눈물을 보인 일은 단 한번, 첫 아이를 지울 때 뿐.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 또한 독자의 것이지 지하루의 것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가혹한 운명에 온몸으로 부딪혀가는 그녀의 긴 긴 세월을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지만 제게는 마치 구도자의 것처럼 느껴진 이유입니다. 어느 독자는 그녀를 혐오할테고(충분히 이해합니다) 또 어느 독자는 그녀를 연민하겠지만(잠깐동안은 저도 그랬습니다) 우리 의견이야 아무 상관없이 그녀는 별이 총총한 밤으로 내처 혼자서 걸어 갈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조금 과장하면 살아있는 보살 같아요. 조금 성스럽기까지 했다고 하면 보살님에 대한 모욕일까요? 이런 삶을 산 여자를 두고 이런 생각 진짜 말도 안되죠? 저도 말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녀의 삶으로 투명하게 정화되는 이 마음을 어떻게 다 전해야할지. 끙끙.


지하루의 한자는 일천 천자에 봄 춘자를 쓴 거라고요. 책을 두 번이나 읽고 나서야 그 이름 뜻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삶과는 너무 다른 이름인데도 묘하게 동의가 갑니다. 피지 않은 꽃 사키코가 천 개의 봄 지하루를 낳고 천 개의 봄이 다시 야야코, 새로운 시대의 아이를 탄생시켰네요. 야야코의 이름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삶은 어머니와도 할머니와도 많이 다를 거라는 강렬한 예감으로 책을 덮습니다. 미세먼지가 낭만을 가려서 창을 열지도 밤하늘을 구경하지도 않았지만요. 투명한 글을 차곡차곡 읽고나니 마음의 때가 벗겨진 듯 후련하고 개운합니다. 몇 안되는 제 안의 슬픈 더깨를 지하루가 다 가져간 듯이 가벼워요. 창밖의 하늘에는 별이 총총할 것만 같구요. 환하게 맑은 봄을 맞은 기분입니다. 정말로 봄이 다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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