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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계절 ㅣ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평점 :
"우린 절대로..... 우리 자신으로는 존재할 수 없어. 분명히 더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
"그런 건 없어요."
"아니, 있을 거다. 산제가 여러 번의 계절을 살아남은 최초의 제국일 리가 없어.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했다는 것,
그만큼 강인한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나 있다." (p170)
"생존은 옳은 게 아니다.
난 지금 당장 널 죽여 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너보다 나은 건 아니지." (p171)
"삶과 생존은 같지 않다." (p583)
하늘과 땅이 전복된 세상이다.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 대지께서 더욱 숭앙받는다는 의미에서.
쪼개졌던 대륙이 최초의 모습대로 한 덩어리로 뭉쳐졌을 때 그 충격으로 많은 민족이 많은 문명이 소멸됐다. 대지는 치매 걸린 노인마냥 종잡을 수 없는 상태로 화를 내고 불을 뿜고 가슴을 들썩이고 크게 한숨 쉬다가 기분이 내킬 때면 잠잠해진다. 물론 조금의 자극만 주어져도 벌떡 일어나 지상의 자식들에게 발길질 하기를 주저하지도 않고. 이토록 폭력적인 아버지를 발 아래 모시고 살아야 하는 자식들의 운명은 가혹하다. 문명은 중세 농경사회처럼 쇠퇴하고 외부인의, 그러니까 독자의 시각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신분과 쓰임으로 나뉘어진다. 인종차별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동양인으로 추측되는 사람들도 보이지는 않고 묘사 속의 인물들은 대게 흑인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들, 로가 혹은 오로진, 대지를 느끼는 새로운 종의 인류가 있다. 대지의 힘을 이용해 땅을 안정시킬 수도, 지진을 낼 수도, 도시 하나를 지반 밑으로 가라앉힐 수도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은 국가 소속의 펄크럼에 귀속되어 수호자로부터 감시 당하며 쓰임을 찾거나 괴물처럼 사냥 당하거나 영영 존재를 숨기거나 재수가 없으면 제 아버지의 주먹에 두들겨 맞아 살해 당한다.
에쑨은 아들을 그렇게 잃었다. 남편은 아들의 능력을 (아마도) 목격하자 마자 얼굴 형태조차 알아 볼 수 없게 묵사발을 내어 거실에 던져놓았다. 숨 쉬지 않고 누운 아들이 갑갑해 할까봐 에쑨은 아들의 코 밑까지만 이불을 덮어주고 그 옆에 누워 딸을 떠오릴 때까지 누워있었다. 그의 손에 자신과 똑닮은 오로진의 능력을 가진 딸이 있으므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신혼시절 남편과 함께 꾸려놓은 비상 주머니를 들고 에쑨은 길을 나선다. 다마야는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다 오로진의 능력을 깨쳤다. 그저 밀쳐졌을 뿐인데 아이는 친구를 얼려 죽일 뻔 했다. 대지의 힘을 끌어쓰면 반드시 대기의 기온이 극하강 하니까. 그 부모는 아이를 때려죽이지는 않았지만 두려워 창고에 가둔다. 다마야는 신고를 받고 찾아온 펄그럼의 수호자에 이끌려 길로 나섰다. 수호자 샤파는 다마야를 복속시키기 위해 맨정신으로 아이의 팔을 부러뜨린다. 다마야는 굴종을 배웠고 샤파는 댓가로 사랑을 약속한다. 시엔은 이미 펄그럼에 속한 오로진이다. 열반지 계급의 오로진의 피를 잇기 위해 알라배스터와 성관계를 가지고 그와 함께 임무를 맡아 길을 나선다. 펄크럼의 배움을 벗어나 세상을 보는 일이 처음인 이때 목격한 어린 로가와 펄크럼의 실체 앞에 구역질 한다. 세 대지의 딸들이 모두 그렇게 제국도로에 발을 디뎠다.
처음엔 둔치, 우리 평범하고도 나약하며 편견이 강한 일반인들과의 사투려니 했다. 힘의 근원을 알 수 없는 수호자와 펄크럼에게서 독립하려는 로가들의 사투인가도 했다. 스톤이터, 사람도 돌도 아닌 바위인간들이 등장했고 지하세계가 나타났으며 아버지 대지는 계속해 종말을 준비하며 지층을 부서뜨리고 있기에 이제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지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다. 분명한 건 세 여성이 섬세하고 예민한 대지 "고요" 위를 단단한 걸음으로 종단 중이라는 거다. 셋이되 하나인 그 걸음걸음들이 고요의 지독한 악몽을 깨트리기를. 다섯 번째 계절에서, 아니 계절 속에서 생존하려는 또 살해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지켜나가기를. 누구의 혐오도 누구의 구원도 아닌 반드시 그 자신으로, 스스로의 의지대로 존재하기를. 꼭 세상을 바꿀 방법을 찾기를.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눈물로 책을 덮으며 마음 깊이 바라고 또 바란다.
** 인간적으로 이런 책을 1권만 삐쭉 내는 출판사는 넘 양심없는 거 아닙니까.
독자 안달나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2, 3권 얼른!! 같은 날!!에 출간해 주십셔.
버선발로 서점까지 달려갈게요ㅠㅠㅠㅠㅠㅠ
** 알라배스터 찡찡씨 뭘 하려는 거에요, 어쩌려는 거에요, 에쑨한테 그르지 마여ㅠㅠㅠ
그런데 왜 나는 왜 애쑨보다 알라배스터에 더 매료되는 것인가ㅠㅠㅠㅠㅠ
다 죽이고 다 쓸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아 이런 생각 안돼안돼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