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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가 그린 사람들 - 빈센트의 영혼의 초상화
랄프 스키 지음, 이예원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제목 그대로 반 고흐가 그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반 고흐 자신의 낯익거나 낯선 각종 자화상들부터 연인이었던 매춘부와 그녀의 딸, 친구 화가들과 그들의 아내, 부모님, 갓난아기와 우편배달부, 숙박했던 여관의 종업원, 카페나 살롱의 주인, 자신을 치료했던 의사와 간호원, 농부와 시골여자, 직공, 시인, 피아노 치는 소녀와 주아브 병사의 초상화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매력이 있거나 그릴 기회가 닿았던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반 고흐의 그림이라고는 쨍한 해바라기와 잘린 귀를 붕대 감은 자화상 밖에 몰랐던 나는 이토록 많은 그의 사람들과 87개나 되는 그림들이 더욱 신기할 수 밖에 없었다. 반 고흐라고 부르는 이 화가가 자신의 그림에 꼭 꼭 빈센트라는 서명을 남겼다는 사실도, 해바라기와 풍경들로 유명하지만 그 자신은 초상화에 가장 큰 열정을 품었다는 점도, 책과 현실과 예술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는 기록도, 젊거나 아프거나 회복 중이거나 노여워하거나 힘찬 시선이 담긴 그의 많은 자화상들도 영영 알지 못했을거라 생각하니 이 책을 읽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차! 그가 좋아했던 책 <톰 아저씨의 오두막>, <크리스마스 캐럴>도 빼먹을 수 없지. 좋아했던 작가는 에밀 졸라! 그의 그림 "성경이 있는 정물" 속에는 에밀 졸라의 작품 <삶의 기쁨>이 등장하기도 한다. 반 고흐의 최애 작가였다니 올해엔 나도 꼭 한 권쯤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지.
반 고흐는 백발이 성성할만큼 장수하며 긴 시간 그림을 그렸던 화가는 아니다. 그 정도는 나도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나 빨리, 서른 일곱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줄은 몰랐어서 그의 마지막 자화상 앞으로 돌아가 긴 시간 화가와 눈을 맞추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동생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는 편지를 쓰고 채 50일이 지나지 않았던 때 자살을 결심한 화가의 어떤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졌기를 바래보며. 그림 속 서른 여섯의 나이가 무색한 눈빛에 숙연해지며. 17일 동안 남긴 백점이 넘는 작품들에서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느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을 들었던 그 손에 총을 쥐었던 그 날에 한탄하며.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파리, 아를, 생 레미의 정신병원을 거쳐 반 고흐의 마지막 숨이 남은 오베르 쉬즈 우아즈까지 이어지는 초상화들의 여정이 반 고흐를 잘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꽤 새롭지 않을까 싶다. 반 고흐의 시선과 마음이 닿았던 풍경과 사람들 사이를 눈으로 더듬고 손 끝으로 쓸며 정처없이 거닐어 보시기를. 유독 마음이 메마른 날 위안이 되는 책과 그림이었다.
*<반 고흐가 그린 사람들>은 책 자체로도 아주 크고 근사하지만 실린 그림 한 장 한 장에 어린 출판사의 정성에 감탄이 나온다. 바로 작품들마다 촉감이 달랐던 것! 미술관의 관람객이 아니라 책을 잡은 독자이기에 그림을 쓰다듬어 볼 줄을 알았던걸까. 어떤 그림은 미끈매끈 어떤 그림은 오돌토돌. 크고 작은 그림의 질감에 어떤 규칙성이 있는게 아니어서 한 점 한 점 더욱 신경쓰며 바라보고 책을 매만졌던 것 같다. 글밥이 적은 책을 이렇게 오래 공들여 감상한 일은 거의 처음인 듯. 무슨 말인지 몇 번을 읽어야 이해가 가는 번역은 조금 아쉽지만 그런 아쉬움마저 그림과 반 고흐의 기록이 상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