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 주술사부타 AI 의사까지, 세계사의 지형을 바꾼 의학의 결정적 장면들!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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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외치. 부싯돌로 된 단검과 금속 도끼를 지닌 나는 이 시대의 잘 나가는 남자다. 족장급 또는 그 이상. 아무도 나를 하대할 수 없지. 자랑은 아니지만 내 도끼면 30분 정도 나무를 찍어도 날이 무뎌지지 않는다. 30분이면 나무 하나 똑딱 벨 수 있는거냐고 묻지는 마라. 5000년도 더 전의 일이라 거기까진 기억나지 않으니까. 30분은 그럼 어떻게 기억하냐고? 저건 내가 시험해 본 게 아니라서 그렇다. 1991년에 알프스 산맥 외치 계곡에서 나를 발견한 과학자들이 테스트를 해봤던게지. 이래뵈도 현존 최고로 정확한 육체를 보존 중인 신석기인이다 이 말씀이렸다. 살아생전 나는 아팠다. 허리도 쑤시고 무릎도 욱식욱신 발목은 저릿저릿 거기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다. 내 무기만 봐도 알겠지만 한 때는 우리 부족 최고가는 사냥꾼이었는데 세월도 야속하지.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해봤다. 문신도 새겨보고 마귀 쫓는 주문도 받고 개구리 고은 물인지 썩힌 물인지 정체도 알 수 없는 즙도 먹고. 아니 그게 치료야? 병을 도로 키우겠는데? 싶을 거다. 근데 그 땐 저런 게 치료였다. 주술사로부터 마법적인 기운을 받는거지. 물론 하나도 낫지 않았지만. 마흔 다섯, 신석기 시대에 태어나 이만큼 누리고 살았으면 천수를 다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해 곱게 죽으려고 했는데 어떤 놈이 내 뒷통수를 쳐서 화살 맞고 죽는다. 두고 보자! 피를 줄줄 흘리며 눈을 감을 적만 해도 이걸로 생은 끝일 줄 알았는데 쭈꾸미도 아니고 문어 외계인이 내 앞에 등장했다. 타임머신을 제공할테니 의학이 발달했던 시간들을 찾아가 내 병을 치료하란다. 생전 처음 보는 외계인이 호구 잡혀 주시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나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의사 다양한 의료법을 만났다. 이집트와 그리스, 중국, 영국과 스위스, 페루, 이라크와 미국, 독일 등등. 의학으로 좀 유명하다 싶은 나라들은 다 가본다. 마법사 타이틀을 가진 이집트 의사를 만나 당뇨병까지 기록된 의학 파피루스를 함께 읽었다. 그리스에서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를 만나 진단도 받았는데 내 심장이 아픈 게 체액 불균형 때문이니 푹 쉬면 저절로 회복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문제는 가슴 통증 환자도 나랑 똑같은 진단을 받았다는 거. 사이비 아냐? 그래도 히포크라테스는 내가 어디가 아픈지 그리스 사람들에게 절대 소문내지 않을테니 그 정도면 좋은 의사라고 할 수 있겠지. 히포크라테스의 이백년 후배 갈레노스도 만났는데 하필이면 치료법이 사혈이었다. 피를 빼서 체액불균형을 맞추는건데 나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 피 뽑다 또한번 죽을 뻔 한다. 문어 외계인 아니었음 어쩔 뻔 했는지. 참고로 이 사혈법은 1300년 동안이나 유럽 의사들을 완벽하게 지배해서 나를 더욱 황당하게 만든다. 시대가 바뀌어도 가는 곳마다 피를 뽑자네? 세계 최초의 병원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가 어딘 줄 아시는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놉! 1248년 카이로에 지어진 만수르 병원이다. 병상이 자그마치 8000개였다고. 만수르는 요즘에도 그때에도 참 대단하다. 인종, 종교, 시민권과 상관없이 일단 병원에 온 사람은 자의가 아닌 이상 돌려보내지 않았거든. 루이 9세의 7차 십자군 원정대가 출발하던 때라고 생각하면 이거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요즘 사람들은 이슬람 하면 편견부터 가지는데 당시만 해도 굉장히 깨어있는 종교였다. 잘 상상이 안되지만.

흑사병이 한창 유행이던 영국에서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죽였던 그 대단한 병도 체험했다. 의사처방이 후추, 계피, 마늘을 태우는 거였는데 어떻게 신석기 시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은 치료법을 쓸 수가 있나? 정말 황당하더군. 내 병은 여기서도 고치긴 불가능이었다. 콤롬버스들 때문에 말라리아와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흑사병에 걸려 때죽음을 당한 원주민들도 보았고 그들에게 매독을 넘겨받은 유럽인들도 보았다. 콜레라의 전파를 막은 스노와 천연두 백신을 만든 제너, 엑스선을 발견한 뢴트켄도 만났지. 특히 뢴트켄 이 사람 진짜 대단하다. 의사가 아니라 물리학자라 내 병과는 무관하지만 특허 내자는 기업 제안도 거절하고. 엑스선은 자신이 발명 한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거니까 모든 인류가 공유해야 한다는 훌륭한 말까지 하는데 한때 족장급이었던 나는 그의 마음가짐에 많은 감동을 느꼈다. 아참 나 정신병원에 감금도 된다. 거기서 아주 충격적인 근황을 전해 들었는데 놀라지 마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말이다. 신석기인인데 이 책을 어떻게 아냐고 묻지는 말고. 하여튼 주인공 빨강머리 맥머피가 전기충격요법으로 거의 식물인간이 됐던 거 기억하시는지? 나는 기억한다;; 소설에서 본 충격적인 모습도 그렇고 너무 비인간적인 묘사들로 나는 전기충격이 더는 시행이 안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보기보다 굉장히 효과가 좋아서 미국에서도 매년 10만명, 한국에서도 2014년에만 250명이 치료를 받았다. 어떻게 아냐고? 나 지금 한국이거든!! 타임머신을 타고 타고 타고 또 타고 하다가 건강보험이 시행된 대한민국까지 와버린 거다. 그래서 내 병이 뭐냐고? 완치는 되었냐고? 다시 신석기로 돌아갈 거냐고? 궁금하면 책을 봐라. 아무것도 모르는 신석기인에게 배우는 의학세계사가 재미나도 놀라지 말고. 리뷰가 병맛인 건 이해해 주시길. 이 책이 의학세계사고 내가 신석기인이라 그런 거니까.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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