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사랑한 집 - 삶의 공간에서 만나는 예술가의 한마디
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 류순미 옮김 / 페이퍼스토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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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의 예술가가 사랑했던 집들이 소개되어 있는 책이다. 고흐와 모네, 모리스와 드라크루아, 폴 세잔과 르누아르, 달리와 모로, 렘브란트와 마그리트,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루벤스 등. 위대한 예술가들의 집은 어떨까 그야 궁금하기는 했지만 예술가 = 가난 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탓에 이토록 낱낱이 아름다울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진 가득히 풍겨오는 정취와 화가들의 근사한 취향, 집 안팍으로 배여있는 화가와 관련한 기록들에 눈이 머는 시간이었다.
 
르네상스 전성기의 천재 조각가이자 화가, 간축가, 시인이었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에 대한 첫기록이 그의 아버지의 손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1475년 행정관이었던 미켈란젤로의 아버지가 둘째 아들의 탄생을 서류에 기록했다. "나는 아들이 태어난 사실을 기록해 둔다. 미켈란젤로라고 이름을 지었다."(p62)하고. 천재로 오래오래 사랑받았던 예술가의 시작이 그 아버지로부터 쓰여졌다는게 나는 왜 그리 감동적이던지. 교회 세례명부 등을 지극히 꼼꼼하게 기록했다는 이탈리아의 민족성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미켈란젤로가 동성애자인 줄도 이 책으로 처음 알았는데 평생 독신이었지만 우애 깊은 형제들과 조카의 삶의 전반을 책임지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명성 때문인지 아틀리에를 매우 크게 쓰고 있었다. 라파엘로와는 달리 그의 생가는 전쟁과 지진 등으로 몇 번이나 무너졌고 기록에 따라 후대에 다시 세워졌다. 물랑루즈의 포스터를 그린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침실 앞에서도 잠깐 멈춤. 어른이 되어서도 키가 152cm 밖에 되지 않았다는 화가의 꽃이 만발한 침실 속에 남몰래 누워본다. 이토록 아름다운 침대에서 젊고 연약했던 화가가 꿈꾸었을 아름다운 인생을 상상하면서. 매음굴과 약과 술에 중독되어 스러져버린 36살 화가의 짧은 생에 숙연해지며. 아홉 자녀의 아버지였던 밀레의 집, 달걀이 인상적인 달리의 집, 최강 집돌이였던 모로의 집, 지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목수들 때문에 집을 만드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세잔의 집, 엄청난 가격의 대저택을 소유했었지만 말년엔 부랑자들과 마찬가지로 공동묘지에 묻힌 렘브란트의 집, 서양미술사에서 손꼽힐 정도의 부를 축적한 루벤스의 집, 그 자체로 한폭의 그림같은 모네의 집과 고흐의 죽음을 안아주었던 다락방이 독자의 눈을 번쩍번쩍 뜨이게 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집에서 묻어나오는 삶과 그림에 대한 화가의 가치관들이 그야 모조리 진실일리야 없지만 한 장 한 장 섬세하게 찍히고 쓰여진 정성에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눈감으며 마냥 감탄하고 말았다.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상세 주소도 쓰여져있지만 내가 그들의 집을 방문할 일은 요원할 터. 대신에 사진 속 집의 정경과 그림들, 소품들로 화가가 문을 열고 들어가 채광이 좋은 커다란 창 앞에서 붓을 들고 열망과 피로에 젖어 눈을 감고 잠드는 순간들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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