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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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이다. 책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으시시한 날을 골라서 읽겠다 결심했다. 간밤 아쉽게도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무서울 정도로 바람이 불었고 방에도 찬기운이 돌아 으슬으슬했다. 보일러를 돌리고 이불 속에 포옥 몸을 숨긴 채 빼꼼 책을 펴들었다. 분위기 내는 건 좋지만 감기 걸리면 안되니까 ㅋㅋ 시작부터 주인공은 창문과 베란다를 잠그고 부엌칼을 모조리 숨긴 채 한줌씩 소금을 넣은 물그릇을 거실 곳곳에 배치한다. 수건을 감싼 쇠망치로 집 안의 거울도 모조리 때려부셨다.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그는 대문을 열어놓고 "그것"을 기다리는 중이다.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를 쫓아다닌 집념 넘치는 그것, 아마도 보기왕이라는 존재를. 바람이 다시 휘이잉 부는데 무섭다 무서워 라고 중얼대면서도 씨익 웃고 있는 나. 조짐이 좋다. 아무래도 이거 완전 내 취향 같은데? 잠깐 고민하다 맥주까지 한 캔 꺼내온다. 호러에는 맥주! 책맥의 밤으로 보기왕을 초대한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어떻게 해서 외가댁에 갔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좋아하는 과자와 잔뜩 쌓인 만화책으로 히데키는 꽤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는 외출하시고 치매 걸린 할아버지의 침상 옆에 누워 뒹굴뒹굴 하던 그 때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린다. 상단이 불투명 유리로 되어있는 조악한 문 하나를 사이로 둔 채 회색 그림자의 손님과 대화하던 히데키는 기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할머니를 찾고 삼십년도 더 전에 죽은 외삼촌을 찾고 다시 할아버지를 찾으며 그의 이름을 세번씩 부르는 여자. 회색 그림자가 커지고 덜커덩 대문이 떨리는 순간 정신이 온전치 않던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외친다. "돌아가!" 그러자 거짓말처럼 문 밖의 그림자도 목소리도 문의 떨림도 사라졌다. 식은땀에 흠뻑 젖어 절대 문을 열어줘서는 안된다고 당부하는 할아버지.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 시간이 지나고 성장하는 사이 그는 그 모든 일을 잊었다. 결혼을 하고 아내가 딸 치사를 임신하기 전까지 그 일은 그저 의외로운 추억에 지나지 않았는데 히데키는 어쩌다 보기왕을 쫓게 된 걸까? 어쩌다 보기왕이라는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요괴에게 쫓기게 된 것일까?

1부 방문자는 집안의 폭군으로 군림하던 외할아버지와 달리 가정에 헌신하는 젊은 아버지 히데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내에 대한 사랑, 딸 치사에 대한 부성애가 보기왕의 두려움 속에서도 흐뭇하다. 2부는 주정뱅이 부모로부터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채 성장한 아내 가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1부와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펼쳐지는 2부를 통해 보기왕이 무엇을 통로로 히데키에게 계속해 가까워지는지를 알게 된다. 히데키 부부를 돕는 심령전문기자 노자키가 서술하는 3부 제삼자. 영매 고토코가 보기왕을 잡기 위해 펼치는 신령한 힘도 놀랍지만 밝혀진 보기왕의 진실과 다하라 집안의 비밀 앞에 역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구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장르가 호러야 미스테리야 싶게 작가가 깔아놓는 계속된 반전들이 실로 놀랍다. 1부, 2부, 3부의 끝마다 카타르시스를 마구마구 느끼게 하는 힘도 대단하다. 기억하는가? 대답을 하면 안된다. 문을 열어서도 안된다. 할아버지는 그녀를 어쩌면 그를 절대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히데키는 지금 홀로 문을 열고 보기왕을 기다리는 중이다. 왜? 어째서 이런 방법을?!.. 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나면 내가 맥주를 마셔서 취하는지 책 때문에 취하는지 알 수 없게 더욱 취하는 기분이 된다. 일본 소설상은 믿을 수 있다. 그 믿음에 다시 한번 부합하며 독자의 맘 속에  단단한 지층을 쌓은 책 <보기왕이 온다>를 가을을 흠뻑 적실 호러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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