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 1978년 뉴베리 상 수상작
캐서린 패터슨 지음, 도나 다이아몬드 그림, 김영선 옮김 / 사파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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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이면 제시 에런스는  달리기를 한다. 단 한번 경험한 달리기 1등의 위엄, 그 환희를 재현하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출근하는 즉시로 마당을 가로질러 쓰레기 더미를 타고 넘어 울타리를 지나 소들이 풀을 뜯는 들판으로 나가 심장이 터질 듯이 다리가 부서져라 달리고 또 달린 나날들. 그리하여 개학이 되고 스타트 라인에 섰을 때 제시는 한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설마하니 여자 아이인지 남자 아이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 전학생이 자신을 제치고 1등을 하리라고는 말이다. 그 여자 아이를 출발대에 세운 이가 제시였다. 여자면 뭐 어때? 무슨 문제있어? 라는 생각 안에는 그 여자애는 절대로 자신과 우리 남자들을 이기지 못하리란 강력한 믿음이 있었을텐데 여자애 레슬리 버크는 제시를 이기더니 제시의 경쟁자를 앞도적으로 물리치고 전교의 모든 잘 달리는 남자애들을 쓰러뜨렸다. 라크 크리크 학교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아이'에 고무줄 뛰기나 하고 수다나 떨어야 할 여자애가 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남자애보다 더 짧게 친 머리에 교양없이 반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교회에도 다니지 않으며 썩은 우유 같은 요플레를 먹는 도시의 여자 아이가. 
1970년 대 어느 미국 시골 학교의 점심시간이 그렇게 소란스럽게 막을 내렸다.

"우리에겐 장소가 필요해. 우리 둘만을 위한 장소.
이 세상 누구에게도 절대 알려 주지 않을 비밀 장소.
레슬리는 둘만의 비밀 왕국을 '테라비시아'라고 이름 지었다."

두 아이가 친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거라 생각했다. 제시는 아주 자존심이 상했고 분해했으며 레슬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들었으니까. 그러나 잘 달리는 것 이상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제시는 누구도 모르는 외톨박이였다. 다섯 남매 중 유일한 아들. 섬세하지 못한 사춘기 누나들과 언제나 돌봐줘야 할 어린 여동생들, 무심한 아버지와 아들 말고는 부려먹을 이가 없는 어머니의 합동 공격에 집에서는 쉴 틈이 없었고 혼자만의 공상과 그림들은 친구들에게 이해받기에는 너무나 사적인 영역이었다. 그런 제시에게 햄릿과 모비딕의 선장과 고래를 알고 제시만큼 섬세하여 테라비시아라는 비밀의 왕국까지 만들어낸 레슬리만큼 매력적인 친구는 없었으리라. 모두에게 놀림을 받아도, 제시보다 빨리 달리고, 제시보다 용감하고, 제시보다 똑똑하고, 무엇보다 여자아이임에도 어느 새 레슬리는 제시의 유일무이한 친구가 된다. 우정의 기쁨이 비밀의 숲, 비밀의 왕국 테라비시아에서 자연스레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다. 영원할 것만 같은 왕국의 비밀을 안고 언제까지고 함께 일 것 같은 우정에 기뻐하며 밧줄 하나에 의지해 야트막한 개울을 건너 달려가는 상상 속 왕과 여왕과 기사와 요정이 있는 세계 테라비시아. 그곳에서 자라나는 두 아이들의 마음을, 어떤 비극과 움트는 희망을, 미소와 눈물을 꼭 만나보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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